[제주=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겨울의 제주는 대개 바람과 바다로 기억된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찾은 제주의 첫 장면은 그 이미지와 조금 달랐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긴 자리에서 먼저 닿은 것은 숲의 기운이었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이었다. 숲 안에는 예상보다 많은 초록이 남아 있고, 겨울의 숲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표정이 이어졌다.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 바람은 나뭇가지 위에서만 움직였고, 햇빛은 가지를 여러 번 거친 뒤에야 발밑에 닿았다. 그 순간, 계절이 주는 긴장이 한 겹 옅어졌다.
비자림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무엇을 새로 정하기보다, 지금까지 이어온 시간을 잠시 바라보고 싶었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을 향해 선다. 하지만 모든 시작이 전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숲에 서 있으니 멈춰 서는 일 역시 새해의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림은 그런 생각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걷는 동안 몸이 먼저 알아차리게 만든다.
남겨두기로 결정된 숲
‘비자림’은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에 자리한다. 공항에서 차로 40분 남짓. 해안도로를 벗어나자 풍경은 빠르게 단순해진다. 감귤밭과 오름이 이어지고, 길은 점점 조용해진다. 비자림로에 접어드는 순간 햇빛이 바닥까지 곧장 닿지 않는 구간이 늘어난다. 숲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
비자림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무엇을 새로 정하기보다, 지금까지 이어온 시간을 잠시 바라보고 싶었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을 향해 선다. 하지만 모든 시작이 전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숲에 서 있으니 멈춰 서는 일 역시 새해의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림은 그런 생각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걷는 동안 몸이 먼저 알아차리게 만든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
남겨두기로 결정된 숲
‘비자림’은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에 자리한다. 공항에서 차로 40분 남짓. 해안도로를 벗어나자 풍경은 빠르게 단순해진다. 감귤밭과 오름이 이어지고, 길은 점점 조용해진다. 비자림로에 접어드는 순간 햇빛이 바닥까지 곧장 닿지 않는 구간이 늘어난다. 숲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제주 겨울 특유의 공기가 몸에 닿는다. 바람은 차갑고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다. 비자림 입구에 서자 그 감각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공기는 여전히 차갑지만 숨은 거칠어지지 않는다. 바람은 얼굴이 아니라 나뭇가지 위에서만 움직인다. 숲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서자, 몸이 먼저 긴장을 풀어낸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
비자림의 초입은 단정하다. 길은 분명하고 곧다. 그 단정함은 여느 전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의 발길은 분명하지만 숲의 중심은 늘 비켜 있다. 길은 나무를 가르지 않고 돌아가고, 울타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숲에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보다 무엇을 넘지 않기로 했는지가 먼저 읽힌다.
숲길을 걷기 시작하자 보폭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일부러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없다. 바닥에 깔린 화산송이가 발밑에서 일정하지 않은 감각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고 시선은 멀리 나가지 않는다. 이 숲에서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보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비자림의 중심은 나무다. 500년에서 800년을 살아온 비자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그러나 숲은 단조롭지 않다. 같은 비자나무라도 줄기의 방향이 다르고 상처의 깊이도 다르다. 곧게 선 나무보다 중간에서 방향을 틀거나 몸을 기울인 채 살아남은 나무들이 더 많다. 오래 버텨온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숲의 표정을 만든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
줄기가 갈라진 비자나무 앞에서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나무 한가운데는 비어 있고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쪽은 생각보다 깊다. 설명판을 읽지 않아도 이 나무가 쓰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비워진 채로 서 있다는 상태가 먼저 전해진다.
비자나무만으로 숲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단풍나무와 후박나무가 층을 이루고 줄기와 바위 틈에는 작은 식물들이 기대어 산다. 겨울인데도 숲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숨이 한결 깊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일부러 들이마시지 않아도 충분해진 상태였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의 연리지 나무 |
겨울에도 남아 있는 녹음
숲길에서는 자주 멈추게 된다. 특별한 풍경 때문이라기보다 발밑의 소리가 달라질 때다. 화산송이를 밟는 소리가 둔해지거나 가벼워질 때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이 숲에서는 걷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발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숲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비슷하다. 말수는 적고, 걸음은 나란히 이어진다. 앞서 나가려는 기색도, 뒤처지려는 움직임도 드물다. 각자의 속도가 비슷해진 탓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이 숲에서는 사람 사이의 거리마저 과하지 않다.
숲 한가운데에서 ‘새천년 비자나무’를 만난다. 2000년을 기념해 이름 붙인 나무다. 몇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만큼 굵은 줄기를 하고 있지만, 시선을 붙잡는 것은 크기보다 그 앞에 머무는 사람들의 태도다. 누군가는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뜨고, 누군가는 한 바퀴를 돌아 본다. 이 나무 앞에서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앞선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비자림) 숲 한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는 ‘새천년 비자나무’. 지난 2000년을 기념해 이름 붙여진 비자나무로 몇 사람이 팔을 벌려야 닿을 만큼 굵은 줄기를 하고 있다. |
비자림의 관리 방식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데크길은 뿌리를 피해 돌아가고, 울타리는 나무에 바짝 붙지 않는다. 설명은 충분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이 숲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 두기로 한 이유를, 걷는 동안 스스로 느끼게 한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는 단순해진다. 발자국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정도다. 도시에서 늘 함께 했던 소음이 사라지자 생각도 덩달아 단순해진다. 복잡한 문장은 떠오르지 않고 몸의 변화가 먼저 느껴진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이 숲이 왜 ‘천년의 숲’이라 불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쉽게 바뀌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비자림은 과거의 풍경이 아니다. 여전히 자라고 얽히며 시간을 견디는 현재형의 숲이다.
숲을 나서며 다시 길을 바라본다.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길이지만 걸음은 처음과 같지 않다. 이 숲에서의 시간은 특별한 장면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나올 때의 내가 들어갈 때와는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겨울에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