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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나희덕 시인, 길에서 만난 마음[책과 삶]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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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장소
나희덕 지음
달 | 244쪽 | 1만8000원

시인 나희덕은 스스로를 ‘산책자’라고 부른다. 그는 생각이 한곳에 고이거나 혹은 넘쳐흘러 부침을 겪으면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사부작사부작 산책길에 나선다. 목적지는 없다. 두 다리를 따라 걷게 되면 어느 순간 문득 멈춰 서는 지점을 만나게 되고 그 공간은 시인의 ‘마음의 장소’로 남는다.

나희덕의 신간 <마음의 장소>는 그런 산책의 결과물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걷는 동안 마음에 남은 장면들을 기록한 산문집이자 사유 노트에 가깝다. 영국,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 해외 여러 도시의 골목과 거리, 그리고 회산 백련지, 전주 한옥마을, 백운동 별서정원, 소록도, 나로도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47곳의 산책길이 책 속에 담겼다. 이 책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유명 관광지나 이국적인 여행지가 아니라, 무심히 지나칠 법한 일상의 산책길을 주된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선은 늘 낮고, 머무는 시간은 길다. 길에서 마주친 버려진 초록색 소파 앞에서 그는 스산함 대신 돋아나는 새싹의 기운을 발견한다. 아일랜드 던 리어리 바닷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발칙한 상상력도 발휘한다. 중국 옌지의 한 들판에서 만난, 아기를 업은 채 빗속을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도 그는 처연함보다 평화를 읽어낸다. ‘비에 젖은 자는 더 이상 젖지 않는다’는 시인의 깨달음에서 산책은 곧 사유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산문집의 또 하나의 특성은 ‘위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많은 감성 에세이들이 독자를 빠르게 달래고 안심시키는 문법을 택하는 것과 달리 <마음의 장소>는 이해와 성찰의 언어를 선택한다. 마음이 아픈 이유를 쉽게 덮어두거나 봉합하지 않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함께 바라본다. 읽는 동안 즉각적인 위안을 얻기보다는, 읽고 난 뒤 조용히 생각이 남는다. 이 잔여감이야말로 <마음의 장소>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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