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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카르타, 그곳에도 광주가 있었다[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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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가 온다
빈센트 베빈스 지음 | 박소현 옮김
두번째테제 | 464쪽 | 2만7000원
<자카르타가 온다>는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반공 대량학살로부터 시작해 미국이 지원한 반공주의 흐름이 오늘날 세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살펴본다. 사진은 대량학살의 계기가 된 1965년 ‘9월30일 운동’ 이후 수카르노 타도 시위를 격렬하게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자카르타가 온다>는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반공 대량학살로부터 시작해 미국이 지원한 반공주의 흐름이 오늘날 세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살펴본다. 사진은 대량학살의 계기가 된 1965년 ‘9월30일 운동’ 이후 수카르노 타도 시위를 격렬하게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우리는 ‘자카르타’를 알지 못한다. 세계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네시아가 ‘제3세계’ 국가들의 결속을 다진 ‘반둥 회의’ 개최국이라는 정도는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반둥 회의 이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반공 대량학살의 여파가 동남아시아를 넘어 라틴아메리카까지 휩쓸며 ‘자카르타’가 학살의 은유가 됐다는 냉전사에 대해선 들어본 바 없다. 21세기 한국에도 ‘망령’처럼 남아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은폐한 세계사적 비극이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공산당(PKI) 대량학살 사건을 주제로 삼아 학살을 주도하고 실행한 세력과 그들의 배후였던 미국의 움직임, 이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한 반공주의의 흐름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살펴보는 역사 교양서이다.

국제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16년 브라질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극우 정치인 보우소나루의 부상과 반공 세력의 준동을 목격하게 된다. 이듬해 자카르타로 옮겨가 현대사 관련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공산주의자’라는 모함과 협박을 받는다. 이는 남아메리카에서도 받아본 종류의 공격이었다. 그때껏 연결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전 세계적 흐름을 포착하게 된 그는 “두 나라에 만연한 피해망상의 근원인 1960년대 중반의 트라우마적 공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은 냉전 시기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반공주의를 지원하고 공모한 과정과 그 후과를 다룬다. 원제목인 ‘자카르타 메소드’는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 사건을 가리키는데, 당시 좌파 정치 세력과 개혁 세력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50만~100만명이 학살당했다. 저자는 ‘반공’과 ‘대량학살’이 쌍으로 움직이며 세계를 휩쓴 비극이 어떻게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했는지, 그 전사로부터 출발해 참혹한 전개 과정을 넓은 시야로 따라간다.

좌파 말살 목적 100만명 죽음 내몬
인도네시아공산당 대량학살 다뤄

냉전 시기 미국의 반공주의 지원
제3세계 독재정권들과 이해 맞아
각국서 유사한 학살·은폐 빚어내
오늘의 세계 질서 만들어낸 비극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진영(1세계)과 공산진영(2세계)으로 갈라진 냉전의 복판에서,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가 제3세계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1960년대에도 인구가 1억명에 달하는 동남아시아의 핵심 국가였다. 반둥 회의 당시 PKI는 당원 숫자만 전 세계 3위인 공산당이었는데, 비폭력 합법 노선의 운동을 펼치며 노동자·농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에 휩싸인 미국과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정권의 관계가 점차 어긋나고, 미국의 반공 국제 전략과 충돌하면서 파국은 시작됐다.

1965년 9월30일 중간급 군 간부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해 장군 6명이 살해당한다. ‘9월30일 운동(G30S)’으로 불리는 이 쿠데타는 12시간 만에 진압되고 우파 장군 수하르토가 이끄는 군이 나라를 통제하게 된다. 수하르토는 의도적이고 선동적인 날조를 이용해 ‘친공’ 쿠데타의 배후에 PKI가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공산당 여성운동단체 그르와니 회원들이 벌거벗고 춤추며 장군들을 난도질하고 고문하여 성기를 절단하고 눈알을 뽑아 결국에는 죽였다고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후 30년 독재를 하는 수하르토가 반공 서사를 만드는 초기 단계부터 각종 이동통신장비를 공급하고, 군을 진짜 지도자로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앞서 미국은 군사학교를 통해 군인들에게 반공의식을 주입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군부를 지원했는데, 권력의 기회를 잡은 군부 세력은 미국 주도 체제에 편입되고 싶어 했다. 그 결과가 여섯 달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번진 혐오와 학살이었다.

인도네시아 최서단에서 시작된 폭력이 중부 자바와 동부 자바를 지나 발리에 이른 것은 12월이었다. 힌두교 인구가 많은 발리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고 한다. 학살에 나선 사람들은 지인이었고, 정부의 토지개혁안에 반대해온 민병대 폭력배들도 가담했다. 책은 당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 아궁의 기억을 전한다.

“그곳은 집단 매장터였다. 그들은 뼈들을 보면서 해골을 들어올렸다. 누가 소리쳤다. ‘이게 라카 아저씨야!’ 하지만 아니다. 그 해골은 아닌 것 같았다. … 그들은 한참 동안 시체의 잔해 속을 애타게 뒤졌다. 그러다 누군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해골과 뼈가 너무 많이’ 있었다.” 당시 발리 인구 중 5%, 8만명가량이 숨졌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처형장으로 쓰이던 해변 스미냑에 첫 번째 관광호텔이 들어섰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 세력은 저마다 계산에 따라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부의 학살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좌파 및 개혁 세력을 제거하는 데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됐다. ‘자카르타’라는 말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른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이 실행한 유사한 학살 행위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칠레에서 미국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딸 이사벨 아옌데가 쓴 <영혼의 집>에도 ‘자카르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독자들에게 한국 현대사가 겹쳐보일 수밖에 없는 책이다. 반공주의 폭력이 ‘또 다른 얼굴’로 한국에서 반복됐기 때문이다. 발리의 비극에선 한강 작가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쓴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리게 되고, 자카르타에선 5·18민주화운동을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기록한 <소년이 온다>를 만난다.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1953년 이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국은 끔찍한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참혹한 전쟁 이후 남한이 새로운 패권국으로부터 세계체제에서 아주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덕분에 1세계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낯설게,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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