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붙은 쿠팡 규탄 스티커. 연합뉴스 |
최동범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적악지가 필유여앙(積惡之家 必有餘殃)이라는 옛말이 있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경사가 있을 것이고, 악행을 거듭한 집에는 언젠가 재앙이 닥친다는 뜻이다. 기업 경영에서 이른바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최근의 주장 역시 이 오래된 인식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경영자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란 무엇일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직 주주 가치, 즉 이윤의 극대화에 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후 수십년간 기업 경영의 지배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이윤 중심 경영에 강력한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경제학 이론이 대개 그렇듯, 이 결론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필요하다. 시장이 ‘완벽’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는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시장은 현실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시장 실패’로 인한 왜곡을 시정해야 한다.
다만 프리드먼은 그 역할을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몫으로 보았다. 공공선에 대한 판단은 가치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에, 주주들의 대리인에 불과한 경영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정부가 제도와 법규를 정비하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본업에만 집중해서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윤을 극대화하자는 구상이다.
이 맥락에서는 규칙만 어기지 않는다면, 이윤을 늘리기 위한 모든 행위가 원칙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정부 역시 완벽할 수는 없다. 제도와 법규에는 언제나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경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이윤 추구는 ‘법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얻기 어렵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과거에는 기업의 자발적인 선의에 기대는 접근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의에만 의존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전환점은 이윤만을 좇던 기업들이 실제로 비용을 치르기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수익성을 이유로 환경 문제나 노동 관행,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등한시한 기업들이 이윽고 고객 이탈과 규제 강화, 소송 리스크, 내부 구성원의 사기 저하를 겪었다. 결과는 수익성 악화였고, 맹목적인 이윤의 추구가 역설적으로 주주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이에스지는 더 이상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투자 판단의 필수 요소로 부상했다.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와 관련된 문제는 기업의 잠재적 리스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이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기업 역시 이를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악행을 거듭하면 언젠가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은 비교적 자리 잡은 반면, 남보다 ‘착한’ 기업이 되었을 때도 보상이 따르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애초에 무엇을 해야 ‘착한’ 것인지의 기준이 모호한 점도 문제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평가기관의 제시 기준에 맞춰 기계적으로 관련 목표를 설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기출문제만 외워 시험을 잘 본다고 제대로 과목을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듯, 이런 방식의 이에스지 성과가 과연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쿠팡을 둘러싼 이번 사태는 이에스지 경영이 왜 중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산재 은폐나 블랙리스트 활용, 경쟁 제한 등 향후 불법 여부를 다퉈야 할 사안들을 차치하더라도, 수익성에 사로잡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공공복리의 관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아가 이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며, 결국 주주가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 환경과 개인정보 보호, 협력업체와의 관계는 사회적 요인의 핵심 사안이며,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는 거버넌스의 출발점이다. 이번 사례는 이러한 기본조차 부족할 경우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를 선명히 드러냈다. 주주 입장에서도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조차 부족한 기업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의 기본 조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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