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들의 남순(南巡), 즉 남쪽으로의 순례 여행은 한족을 지배한 만주족 지배층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 퍼포먼스이자 제국의 역동성을 강남의 한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시에 한인들의 문화 중심지인 양저우와 쑤저우를 돌아보면서 북방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문화적 향유를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수도 베이징을 떠나 최남단인 항저우까지 장장 1800㎞에 달하는 대운하 코스를 왕복해야 했기에 왕복 3~4개월이 걸리는 그야말로 ‘그랜드 투어’였다.
그랬기에 많은 황제가 원했지만 모든 황제들이 남순을 갔던 것은 아니었다. 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두 주인공인 강희제와 건륭제만이 각각 여섯 번씩 행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남순은 청의 역동성과 관련된 성세의 상징이라 할 만했다.
건륭제는 1784년 2월 11일(음력 1월 21일) 베이징을 출발하며 남순을 선포했다. 25세에 황제에 오른 건륭제의 치세 49년이 되는 해였고 집권 이후 여섯 번째 떠나는 남순이었다. 명분은 강남 지방을 두루 살피면서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강남의 문화적인 힘은 건륭제에게 경계심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여섯 번이나 강남으로 여행을 떠나는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다만 이것이 건륭제의 마지막 남순이 됐다. 이미 73세의 고령이 된 건륭제이기에 더 이상의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았겠지만 15년을 더 살았던 그에게 사뭇 아쉬움이 남았던 여정이었다. 사실 건륭제보다 더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는데, 강남에서 황제를 기다리던 상인들이었다. 수많은 에너지를 지역사회와 유통로인 대운하에 쏟아붓던 이들에게 최고의 고객이 방문하지 않는 것은 사실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후 황하의 물줄기는 다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청의 성세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징후가 다수 포착됐다. 1784년 건륭제의 마지막 남순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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