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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AI 경쟁력, 속도보다 매너

서울경제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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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송경희 위원장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6의 상징적인 변화는 인공지능(AI)이 더 이상 화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를 넘어 이제 AI는 로봇과 모빌리티라는 신체를 입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보고, 듣고, 움직이며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피지컬 AI 시대의 개막이다.

올해 CES 전시장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주목받았다. 자율주행 로봇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속도를 줄이고 길을 가로지르는 대신 잠시 멈춰 양보했다. ‘사회적 주행(Social Navigation)’ 기술이다. 과거의 로봇이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효율성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움직임이 위협이 되지 않는지 사회적 비용을 계산한다. AI의 경쟁력이 연산 속도에서 공존의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가 거실·사무실 등 물리적 실재로 들어올수록 이용자의 불안은 성능이 아닌 신뢰의 문제로 직결된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AI의 실수는 재질문으로 해결되지만 50㎏짜리 로봇의 판단 착오나 침실을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의 사생활 영상 유출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낳는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결국 프라이버시와 안전이다.

이를 구현하는 해법이 바로 프라이버시 보호 설계(PbD·Privacy by Design)다. 이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개인정보 침해 요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적 내재화를 의미한다. 데이터 수집을 최소화하고 수집된 정보는 암호화하며 목적을 달성한 데이터는 지체 없이 파기하는 구조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심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3년 시범 운영을 시작한 PbD 인증을 올해 본격 확산한다. 최근 로봇청소기·홈카메라 등의 제품이 인증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보안과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의 프리미엄을 결정짓는 성능이자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있다.

피지컬 AI가 다루는 정보는 과거 텍스트 중심 정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위치, 이동 경로, 음성, 영상은 물론 시선 처리와 반응 속도,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까지 실시간으로 수집된다. 이는 개별 정보의 집합을 넘어 한 사람의 일상과 성향·관계가 응축된 ‘삶의 궤적’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기술 발전의 걸림돌이 아닌 필수 전제 조건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스스로 맥락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에이전트 AI가 피지컬 AI와 결합하면서 판단 과정의 투명성은 더 중요해졌다. 어떤 논리로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이 가능하고 잘못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책임 소재가 명확할 때 AI는 비로소 신뢰받는 파트너가 된다. 올해 개인정보위가 민관 정책협의회를 통해 마련할 ‘에이전트 AI 가이드라인’은 이런 기준을 정립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이용자가 안심하고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술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피지컬 AI는 머지않아 우리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환영받는 파트너가 되기 위한 조건은 똑똑함보다 믿음직함에 있다. 미래의 시장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배려하고 신뢰의 가치가 구현된 예의 바른 AI의 차지가 될 것이다. PbD와 선제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다져질 대한민국 AI 생태계의 신뢰 경쟁력을 기대해 본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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