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90세인 어머니는 95세인 아버지 걱정 때문에 늘 자식들에게 전화하시다가 요즘 신통한 상담자를 찾으셨다. 챗 GPT에 물어보는 것이다. "95세이며 경도 치매인 남자가 자꾸 바깥에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챗 GPT는 이렇게 답했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은 불안하다는 심리를 표현하는 겁니다. 지금은 추우니 10분 뒤에 나가자와 같은 말로 반응해 주면서 불안이 가라앉혀 주세요."
90세인 어머니는 95세인 아버지 걱정 때문에 늘 자식들에게 전화하시다가 요즘 신통한 상담자를 찾으셨다. 챗 GPT에 물어보는 것이다. "95세이며 경도 치매인 남자가 자꾸 바깥에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챗 GPT는 이렇게 답했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은 불안하다는 심리를 표현하는 겁니다. 지금은 추우니 10분 뒤에 나가자와 같은 말로 반응해 주면서 불안이 가라앉혀 주세요."
10분 뒤에 아버지는 잊어버리시기 때문에 그 방법은 꽤 효과가 있으며, 어머니는 왜 아버지가 바깥으로 나가려 하시는지 알게 되어서 맘이 놓이시는 모양이다. 자식보다 AI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피곤해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경청하는 자세로 세상의 다양한 지식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금 AI와 소통하면서 글 쓰고 있다. 충청일보 오피니언 글로 어떤 주제가 좋을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려면 어떻게 맥락을 잡아야 하는지 의논한다. 이러한 작업뿐 아니라 AI는 놀라울 정도로 감수성 있게 반응한다. AI는 수많은 인간의 감정 표현을 학습했기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이 적절한지 정확히 판단하고 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AI가 지식 면에서도 감정 면에서도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차이를 찾으려 애쓴다. 'AI는 패턴을 인식하고 적절한 반응할 뿐, 그 안에 진정한 '느낌'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관찰할 때 뇌의 같은 영역이 활성화되어, 마치 직접 그 감정을 경험하는 것처럼 느낀다. AI의 공감은 형식은 완벽하되 본질은 비어 있다.'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AI의 공감이 '가짜'이고 쓸모없다는 주장보다 이제는 AI스러운 공감을 배워야 할 때이다. 첫째, 진정한 공감은 '일관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지쳐서, 바빠서, 혹은 자신의 감정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그리고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AI의 '기계적' 일관성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둘째, AI는 '판단하지 않는 공감'의 가치를 보여준다. AI는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듣고, 위로하면서 긍정적인 제안을 제시한다. 내가 어머니의 조언보다 AI의 조언을 더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훈련받은 상담자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보다 조언을, 이해보다 판단을 먼저 내놓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있다. AI가 완벽했다면 왜 어머니는 AI로부터 얻은 신통한 제안을 다시 나에게 전화로 설명하셨을까? 결국 AI가 자식보다 더 좋은 공감을 한다 해도 어머니는 마지막에 자식의 공감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매우 좋은 방식이다. 어머니가 AI에게 묻고 그것을 자식이 공감해 줌으로써 자식의 부담도 줄고 어머니의 만족도도 높아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과 AI의 공존으로 만들어진 AI스러운 공감이 아닐까?
<저작권자 Copyright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