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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5·17'의 그림자…尹 법정에 소환된 전두환·노태우의 '전적'

뉴스웨이 신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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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3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故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故 노태우 전 대통령 노제. 사진=사진공동취재단

3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故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故 노태우 전 대통령 노제.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전두환·노태우 세력보다 더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

박억수 특별검사팀 특검보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를 주도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며 재판부에 이같이 요청했다.

박억수 특검보는 "윤석열과 김용현 등은 국민이 받을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입법권과 사법권을 찬탈해 권력을 독점·장기 집권하려 했다"면서 "국회와 선관위에 대한 무장 군인 난입, 언론사 단전·단수 시도 등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반국가세력에 의한 중대한 헌법 질서 파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내란을 단죄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친위 쿠데타 시도가 반복될 위험성이 적지 않다"며 "공직 엘리트들이 자행한 헌법 질서 파괴 행위를 전두환·노태우 세력보다 더 엄정하게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특검보가 12·3 비상계엄 사건을 '전두환·노태우 내란'과 직접 비교하며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 배경에는 과거 신군부가 남긴 구체적인 전적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한 역사적 소환이 아닌 헌정 질서 파괴의 방식과 결과가 반복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12·12 군사 쿠데타—무력으로 권력 탈취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군 지휘체계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합법적 통제선 밖에서 벌어진 이 쿠데타는 군 내부의 명령 체계를 붕괴시키며 민간 통치에 대한 군의 우위를 현실화했다. 헌법상 통수권과 문민 통제 원칙은 이때 사실상 무력화됐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정당 활동과 정치 집회는 전면 금지됐고, 수많은 정치인·재야 인사·언론인이 연행·구금됐다. 계엄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한 전면 봉쇄는 입법·사법·언론의 독립을 동시에 침해한 조치로 평가된다.

비상계엄 확대의 정점은 5·18 광주였다. 무장 병력이 시민을 향해 발포했고, 이후 군사법정이 동원됐다. 민간인 학살과 군사재판 남용은 헌법 질서를 넘어 국민 기본권을 조직적으로 유린한 사례로 남았다. 사법적 단죄가 이뤄졌음에도, 그 상흔은 사회 전반에 깊게 각인됐다.

국가경제 손실까지…'80년 비상계엄' GDP에도 직격탄



특검은 이번 내란 사건이 단지 정치적 권력투쟁이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을 뒤흔든 범죄라는 점도 부각했다. 박 특검보는 "'대한민국은 안정된 민주국가'라는 국민의 자긍심과 국제사회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식시장은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해 막대한 시가총액이 증발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두환·노태우가 일으킨 정치·군사적 충격은 곧바로 경제로 전이됐다. 1970년대 중반까지 10% 안팎의 고성장률을 유지하던 한국경제는 12·12, 5·17을 전후한 1980년에 들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80년 전후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간 20~30%대에 달할 정도로 치솟았고, 1980년대 초반 평균 물가 상승률도 30% 안팎에 달했다. 10·26 이후 '서울의 봄'과 신군부의 군사력 장악, 5·17 비상계엄 확대, 5·18 유혈 진압으로 이어지는 정치·군사적 격변이 투자·소비 심리를 악화시키고, 외국인 투자자와 채권단의 한국 리스크 인식을 높였다는 평가다. 내란이 경제를 직격한 전형적인 선례인 셈이다.

끝나지 않은 '단죄'…사회적 갈등의 뿌리로



문제는 '단죄'가 법적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사법적 판결과 별개로 전두환·노태우 일가를 둘러싼 재산 형성과 환수 논란은 장기화됐다.


전두환 일가는 이후에도 무기명 채권, 비상장 주식회사, 차명 계좌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하고,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페이퍼컴퍼니 설립까지 동원됐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태우 일가 역시 부인 김옥숙 씨가 아들의 재단에 100억 원대 거액을 기부한 사실 등으로 '안방 비자금'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일가의 재산과 생활 수준은 여전히 호화롭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배경이며, 법적 단죄 이후에도 남는 사회적 비용을 보여주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은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로 인해 '정치·헌정 질서 파괴 → 대외 신뢰 추락 → 성장률 급락·물가 폭등·실업 증가 → 사회갈등 심화'라는 악순환을 이미 경험했다"며 "내란과 부패로 축적된 재산이 완전히 환수되기 어렵고, 결국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비용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국민이 나눠 부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검도 이번 사건을 과거의 반복 가능성이라는 맥락에서 제시했다. 전두환·노태우가 계엄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권력 분립을 훼손하고, 무력을 동원해 제도를 압박한 전적이 분명한 만큼, 동일한 위험 신호에는 더 높은 법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과거의 전적은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방식과 결과를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 재발을 막는 최소 조건이라는 점에서, 법정에 다시 소환된 전두환·노태우의 이름은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가진다.

신지훈 기자 gamja@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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