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이 눈부신 노르웨이의 자연 한복판을 단정한 양복 차림의 남성이 걷고 있다. 언뜻 생경한 조합에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이 순간을 기록한 사진 작가가 박용만 전 두산그룹 및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짝을 이루는 뒤편의 흑백 사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진기를 든 박 전 회장이 수행비서와 함께 있는 일상을 담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는 이 두 장의 사진은 앞으로 사진 작가의 삶을 살기로 선언한 박 전 회장의 자기 소개서처럼 보인다. 그는 “기업가라는 직업과 사진 작가라는 직업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기업인이 어떻게 사진가로 살아갈 것인가를 궁금해할 관람객을 위해 이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생을 기업인으로 살아온 박 전 회장이 사진가로서 첫 개인전을 연다. 지난 5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 중 특별히 마음에 남은 8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이는 동시에 200여 점의 사진으로 구성된 사진집도 출간한다. 16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휴먼 모먼트’를 하루 앞두고 15일 기자들과 만난 박 전 회장은 “앞으로도 사진가로 살기 위해 한 번쯤은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힘들게 1년을 준비했는데 이제부터 진짜 사진가로 평가를 받게 되는구나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크다”고 말했다.
신진 작가의 사실상 첫 데뷔전인 셈이지만 규모가 상당하다. 옥상을 포함해 총 4개 공간이 자리한 피크닉 전 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공간마다 주제와 분위기를 달리하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일례로 1층 공간에는 평소 좋아하는 붉은 색이 도드라지는 사진들을 골라 전시했고 2층은 인물이 함께 하는 장면들을 추려 모았다. 3층은 박 전 회장이 “두서 없는 내면의 순간”이라고 설명한 사진들이, 4층 옥상에는 흑백 사진이 자리했다. 추리고 모은 사진들에는 이름표가 없고 별다른 부연 설명도 없다. 박 전 회장은 “글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진이 오염된다”며 “물론 설명이 더해져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진가로서의 모습을 처음 대중에 내보이는 자리에서 오롯이 나의 사진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시절부터 카메라를 잡은 뒤 한때 기업인을 그만두고 사진기자가 되기를 꿈꿨을 정도로 사진을 사랑하는 그에게는 수많은 기록이 쌓여있을 테다. 지금껏 사진을 달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직접 나눈 사진은 평생 4장도 채 안될 정도이기에 미공개 작품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럼에도 첫 전시를 위해 딱 80여 점만 추렸는데 기준은 비교적 선명했다. 그는 “좋은 사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시 보고 싶은 사진만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시각적으로 훌륭하고 의미 깊은 사진이라도 그 사진을 찍은 기억이 거칠고 괴로운 사진은 가능한 제외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은 사진적인 인상을 넘어 인간적인 면모가 유독 선명하다. 신고 다니던 신발과 담배를 피운 뒤의 재떨이를 촬영한 기록이나 스위스에서 촬영한 아내의 사진, 아들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해 눈길을 끈다.
그의 가족들은 사진 속 피사체를 넘어 전시 전반에도 흔적을 남겼다. 전시 제목인 ‘휴먼 모먼트’는 “인물 사진은 부담스럽지만 사람의 자취가 없는 사진은 매력이 없다”는 박 전 회장의 말을 토대로 큰 아들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가 추천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계획하며 다양한 ‘굿즈’로 제작했는데 이 역시 박 대표가 총괄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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