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중공업. /로이터 뉴스1 |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대명사였던 콩글로머리트(conglomerate)가 일본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콩글로머리트는 서로 직접 관련이 없는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는 등으로 덩치를 키운 복합기업을 뜻한다.
주식시장에서 콩글로머리트식 다각화는 오랜 기간 ‘디스카운트(저평가)’의 대상이 돼 왔다. 특히 최근 10년 새 제너럴일렉트릭(GE), 도시바, 존슨앤존슨, 다우듀폰 등 거대 기업 제국들이 사업별로 분할되면서 콩글로머리트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중공업, 이온(AEON) 등 거대 복합기업들의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콩글로머리트 디스카운트가 ‘프리미엄’으로 뒤바뀌고 있다. 왜 지금, 일본 시장은 다시 콩글로머리트에 주목할까.
◇사업 다각화...위기에 강하다
주된 배경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위기의 상시화다. 단일 사업에 집중한 전문 기업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반면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는 위기 시 강력한 ‘방파제’가 된다. 간사이전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료비가 급등해 전력 사업이 520억엔의 적자를 낼 때, 회사를 지탱한 것은 비핵심으로 분류되던 부동산과 정보통신 사업이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역시 민항기 사업 실패라는 악재를 만났지만, 방위 산업과 에너지 부문의 호조가 이를 상쇄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서로 다른 경기 사이클을 가진 사업들이 상호 보완하며 경영 안정성을 담보한 것이다. 펌프 대기업 에바라(EBARA)는 펌프에서 축적한 회전체·유체 제어 기술을 살려, 석유 플랜트용 압축기나 반도체 제조 장비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왔다. 특히 반도체 웨이퍼 연마 장치 등 정밀·전자 사업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닛케이는 “차세대 성장 영역을 선별해 기존 사업에서 확보한 자금을 투자하고, 사업의 신진대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리스크 분산을 넘어 이종 사업 간의 ‘화학적 결합’이 만드는 시너지도 재평가되고 있다. 유통 업계의 라이벌, 이온과 세븐&아이 홀딩스의 주가 역전은 상징적이다. 세븐&아이가 백화점을 팔고 편의점에만 집중하는 동안, 이온은 유통·금융·부동산을 결합한 독자적인 ‘경제권’을 구축했다. 쇼핑몰(부동산)에 계열사를 입점시키고, 이온카드(금융)로 결제하게 만들어 고객을 묶어두는 전략은 단일 유통 기업이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됐다.
◇빅테크: 新 콩글로머리트
콩글로머리트의 재등장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구글·아마존 같은 미국 빅테크를 막대한 현금력과 인수·합병을 바탕으로 영역을 넓히는 ‘신(新) 콩글로머리트(Neo-conglomerates)’로 규정했다. 아마존은 소매·물류부터 클라우드·콘텐츠 제작·스트리밍까지 아우르고, 알파벳과 애플은 기기·광고·AI·자율주행 등으로 사업을 넓혀 왔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업무용 소프트웨어, 게임, 클라우드, 광고·소셜, 전자 기기 등을 묶어 거대한 생태계를 만든다.
'GAFAM'(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은 최근 신 콩글로머리트로 불린다. /AFP 연합뉴스 |
다만 GE 같은 과거 콩글로머리트가 느슨한 계열사 묶음이었다면, 빅테크는 공통 인프라(플랫폼)로 서비스를 통합해 데이터·결제·멤버십·클라우드로 서로를 밀어주는 구조다. 킴 왕 서퍽대 전략·국제비즈니스 교수는 WSJ에 “빅테크들이 제품군을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방식은 과거 콩글로머리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장기 지배력과 존속을 제공한다”며 “아마존 같이 새로 확장한 사업(클라우드)이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전체 가치 평가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했다.
◇그래도 대세는 쪼개기
콩글로머리트의 장점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계의 대세는 여전히 ‘집중과 선택’에 가깝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약 7000건의 거래를 통해 총 자산 매각 및 처분 규모는 약 1조2000억달러에 달했으며,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영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상장 산업 콩글로머리트였던 스미스그룹은 엘리엇을 비롯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사업 부문 두 곳을 매각했다. 우주항공·자동제어·특수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미국 허니웰도 엘리엇의 압력에 굴복해 회사를 세 개로 분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어렵고 불확실한 경제 속에서 사업 영역이 명확한 기업에 집중하면서 콩글로머리트는 점차 인기를 잃고 있다”며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이러한 기업들의 경영진에게 운영 효율화와 현금 확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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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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