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지난해 10월1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2년 임기를 마치고 법원행정처장직에서 물러나 재판업무에 복귀하는 천대엽 대법관(61)이 최근 사법부 불신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이 추진하는 사법개혁과 관련해선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개혁은 전례가 없다”며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천 대법관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오랜 독재의 역사를 극복하고 시민혁명을 통해 쟁취한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자란 시민들의 투철한 호헌의식과 국회의 공조 덕분에 계엄사태는 조기 해소되었고, 그 결과 사법부 독립과 사법권도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기에, 사법부는 다시 한번 시민들에게 빚을 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천 대법관은 “계엄과 관련한 불법행위의 사법적 처리는 종국적으로 재판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사법부로서는 재판 이전에 이에 대해 법적 평가를 할 수 없는 운신의 제한이 있다”며 “다만 법원행정처장의 지위에서 사법부의 중론을 반영해 국회를 제외한 헌법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또한 반복해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지적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혼란상을 딛고 들어선 새 정부 출범 후에 사법부가 개혁의 동반자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은, 국회 및 정부와 상호 존중 하에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려는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된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저의 불민함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므로, 그로 인해 사법부에 불신을 갖게 된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사법개혁과 관련해선 “외부의 목소리는 존중돼야 하지만, 시급하고 복잡한 법적 분쟁을 다루는 재판 현안과 관련해 올바른 진단과 해법은 현장의 경험과 경륜에 터 잡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천 대법관은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개혁은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수십년간 행해져 온 사법제도 개편 관련 역사를 보아도 그 전례가 없다”며 “이뿐 아니라 재판 등 사법서비스의 이용자이자 당사자인 시민들을 비롯한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게 돼 사법 접근권의 실질적 축소와 후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은 ‘시간과 자력을 겸비한 당사자에게 무한소송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분쟁 해결이 사실심에서 한 번의 재판으로 신속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 대법관은 “올해 사법부의 과제는 2024년부터 추진한 재판지연 해소방안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한편, 2027년부터 다양한 사법개혁 방안을 구현할 수 있도록 국회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함으로써, 사법부가 그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절차적 신중함은 사법부나 법관을 위한 것이 아니요, 사법의 최종 지향점인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는 적시의 분쟁 종식 절차로서의 사법기능 구현 및 이를 위한 충실한 제도의 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새로 구성될 행정처가 국회 등과의 긴밀한 소통 하에 이러한 사법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천 처장은 지난 2024년 1월15일 임명돼 법원행정처장을 2년 동안 맡았고, 이날부터 다시 대법관으로서 재판 업무에 복귀한다. 신임 처장에는 박영재 대법관이 임명됐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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