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한화가 이사회를 통해 인적분할을 전격 결의한 것은 단순한 기업 쪼개기가 아니라 1992년 한국화약에서 ㈜한화로 사명을 변경하며 종합 산업 기업을 선언한 이래 34년 만에 단행되는 가장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김승연 회장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승계 구도의 완성이자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경영 판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는 이번 분할을 통해 방산과 에너지, 금융을 아우르는 글로벌 중후장대 기업과 로봇, AI, 유통 서비스를 결합한 미래 기술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3세 경영과 밸류업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도 눈길을 끈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김승연 회장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승계 구도의 완성이자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경영 판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는 이번 분할을 통해 방산과 에너지, 금융을 아우르는 글로벌 중후장대 기업과 로봇, AI, 유통 서비스를 결합한 미래 기술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3세 경영과 밸류업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도 눈길을 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 사진=각 사. |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가 된다"
한화그룹의 목표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업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인적분할의 핵심은 ㈜한화가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으로 나뉘는 데 있다.
존속법인인 ㈜한화는 방산, 조선해양, 에너지, 금융 등 그룹의 기존 주력 사업을 그대로 유지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새롭게 설립되는 신설법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는 기계, 로봇, 반도체 장비 등 테크 부문과 백화점, 호텔, 급식 등 라이프스타일 부문을 아우르게 된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존속법인이 약 76.3%, 신설법인이 약 23.7%로 설정되었다.
한화그룹 내에서 잠재력에 비해 저평가받았던 김동선 부사장의 사업 영역이 하나의 거대한 독립체로 부상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김동선 부사장은 그동안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을 통해 유통과 레저 사업을 이끌어왔으며 최근에는 한화로보틱스와 한화비전 등 첨단 기술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번에 신설되는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김동선 부사장이 주도하는 유통과 기술의 결합을 실현할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신설법인에는 한화비전(영상 보안), 한화모멘텀(물류 자동화), 한화세미텍(반도체 장비), 한화로보틱스(로봇) 등 4개 테크 계열사와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아워홈 등 3개 라이프 계열사가 편입된다.
단순히 유통 회사를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유통과 서비스 현장에 로봇과 AI 기술을 접목하는 피지컬(Physical) AI 솔루션 기업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호텔, 급식 시설 등 고객과 직접 만나는 접점에 지능형 로봇이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김동선 인사이트
김동선 부사장의 경영 행보는 최근 몇 년간 매우 공격적이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왔다.
지난해 5월 국내 굴지의 급식 및 식자재 유통 기업인 아워홈을 8700억 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식음료(F&B) 사업의 밸류체인을 완성하고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말에는 신세계푸드의 급식 사업부를 추가로 인수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고, 미국 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를 성공적으로 국내에 안착시키며 경영 능력도 입증했다.
최근 한화갤러리아는 에이치앤큐에쿼티파트너스(H&Q)와 파이브가이즈 지분 매각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성공적인 엑시트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초기 투자금 대비 3배의 차익을 거두며 재무적 성과까지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미국 로봇 피자 브랜드 인수, 도심형 고급 리조트 '파라스파라' 인수 등 쉴 새 없는 M&A와 신사업 확장은 그가 그리는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의 밑그림을 보여준다.
김 부사장은 14일 한화푸드테크의 사업 전략을 점검하며 글로벌 푸드테크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인 행보도 예고했다.
단순히 식음료 브랜드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로봇 기술을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주방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미래 외식 산업의 표준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기존의 백화점 유통업이 가진 성장 한계를 기술 기반의 신사업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김 부사장의 이러한 행보가 철저한 기획과 검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 파이브가이즈는 론칭 초기 줄 서기 열풍을 일으킨 데 이어 강남과 여의도 등 핵심 상권에서 꾸준한 매출을 기록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맛과 품질에 대한 타협 없는 원칙이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에게 통했다는 평가다. 김 부사장은 이 성공 방정식을 로봇 피자에도 그대로 적용해 기술력과 품질을 동시에 잡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한화로보틱스와의 협업은 김 부사장이 그리는 큰 그림의 핵심이다. 한화푸드테크가 인수한 미국 스텔라피자의 기술력에 한화로보틱스의 협동로봇 노하우를 결합해 조리 공정을 완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12인치 피자 한 판을 5분 만에 만들어내는 기술은 인건비 상승과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외식 업계에 혁신적인 솔루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공격적인 신사업 확장과 함께 책임경영 의지도 명확히 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 갤러리아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17%대까지 끌어올리며 2대 주주로서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백화점 업황 둔화로 인한 실적 부진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한 것은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경영 정상화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동선 부사장이 파이브가이즈를 통해 경영 능력을 검증받았다면 이제는 푸드테크라는 더 큰 무대에서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인적분할은 김동선 부사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기존 ㈜한화 체제하에서는 방산이나 에너지 같은 거대 사업 부문에 가려져 신속한 투자나 의사결정이 어려웠던 테크와 라이프 부문이 독자적인 지주사 체제를 갖추게 됨으로써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적기에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김동선 부사장이 신설 지주사를 통해 로봇과 유통을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그룹 내 제3의 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 꽃길만 걷나
이번 인적분할을 두고 시장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주주가치 제고 정책이다.
㈜한화는 이번 분할과 함께 파격적인 주주환원책을 내놓았다. 전체 보통주의 5.9%에 해당하는 자사주 445만 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가 기준으로 4562억 원에 달하는 규모로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자사주 소각 계획 중 최대 규모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주주 친화 정책이다. 더불어 배당금 역시 전년 대비 25퍼센트 상향된 주당 1000원을 최소 보장하기로 했다. 이는 인적분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경영진의 강한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와 증권가에서는 이번 분할이 이른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Conglomerate Discount)를 해소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방산, 금융, 유통, 기계 등 성격이 판이한 사업들이 한 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는 각 사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방산 부문이 호실적을 내더라도 유통 부문의 부진이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분할을 통해 투자자들은 방산과 에너지에 투자하고 싶은 경우 존속법인을, 로봇과 유통의 성장성에 배팅하고 싶은 경우 신설법인을 선택하여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존속법인인 ㈜한화의 미래 비전 또한 명확하다.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존속법인은 방산과 에너지, 해양 분야에서 '글로벌 초격차'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김동관 부회장은 최근 다보스포럼 기고문을 통해 '전기 추진 선박 기반의 해양 생태계'라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200년 넘게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해운 산업의 판도를 뒤집겠다는 포부다. 그는 단순히 선박을 만드는 것을 넘어, 안정적인 에너지저장장치(ESS), 항만 충전 인프라, 탈탄소 에너지 공급 설비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부문을 이끄는 김동원 사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들은 존속법인 산하에 남게 되지만, 독자적인 경영 체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김동원 사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노부은행과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금산분리 규제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금융 부문의 별도 지주사 전환이나 독립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존속법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며 그룹의 현금흐름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인적분할은 표면적으로는 사업 구조의 재편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화그룹의 승계 구도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과 에너지, 차남 김동원 사장은 금융, 삼남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과 로봇이라는 뚜렷한 '삼분지계'가 확립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와 한화에너지의 지분 정리를 통해 세 아들의 지배력 기반은 이미 탄탄하게 다져진 상태다. 김동선 부사장의 경우 이번 분할을 통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향후 형제간의 지분 교환이나 정리를 통해 계열 분리를 가속화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다만 한화그룹은 당장 급격한 계열 분리보다는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세 형제가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성과를 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은 지분 관계는 옅어지더라도, 한화라는 브랜드와 경영 철학을 공유하며 상호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신설법인의 로봇 기술은 존속법인의 방산 무기 체계나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활용될 수 있고, 존속법인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은 신설법인의 스마트 빌딩 솔루션에 적용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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