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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왜 퇴출돼야 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소비자 개인정보 관리 실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소비자와 근로자를 숫자로만 관리해 온 기록들, 반복되는 사망과 사고조차 수많은 범죄 증거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건 어쩌면 극단적으로 비인간화한 하나의 기업을 통해 무한히 효율만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우리 공동체에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차가운 광장 바닥에 서서, 앉아서 온몸으로 외쳤던 윤석열의 파면과 처벌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그때 우리는 완벽한 권력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에 공동체 밖으로 축출했던 것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이렇게도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기업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존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국가와 권력을 심판하면서도 자본에는 침묵하고 굴종하는 이중 기준을 스스로 용인하게 된다.
쿠팡 사태는 사실 개별 기업의 논란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경영 실패나 노사 갈등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는, 한국 유통 구조 전반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 가깝다. 플랫폼 하나의 위기가 이렇게 큰 파장을 낳는 이유는 분명하다.
쿠팡은 더 이상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수많은 판매자와 노동자, 소비자의 생계를 매개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됐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붕괴는 언제나 약자에게 먼저 도착하고 가혹하게 작동한다.
쿠팡은 더 이상 기업의 언어로 설명되기 어렵다. 소비의 편리함을 앞세워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비용은 판매자와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이윤은 내부화됐고 책임은 사라졌다. 장시간 노동, 불투명한 계약 구조, 정산 리스크 등 많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됐다.
쿠팡이 기업으로서 사회적 용인을 받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주장에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존속 불가’라는 판단 그 자체가 아니라 쿠팡을 퇴출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퇴장은 관리될 수도 있고, 방치될 수도 있다. 관리된 퇴장은 질서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지만, 무질서한 붕괴는 또 다른 재난을 낳는다.
플랫폼 안정성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발생하는 건 판매 대금 지연과 정산 불능이다.
이는 곧바로 카드 결제 대금, 물류비, 광고비 등 비용 부담으로 전이된다. 소규모 판매자에게 한두달의 정산 공백은 곧바로 몰락을 의미한다. 위메프 사태가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정산 지연 하나가 어떻게 개인을 파산으로 내몰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 지점에서 지금의 담론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 바로 ‘소비자 탈팡’ 중심의 문제 제기다. 소비자 편의를 포기하고 정의를 선택하자는 호소는 도덕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장의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소비자는 분산돼있고, 선택은 느리며,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소비자는 앱을 지웠다가 다시 설치할 수 있지만, 판매자는 정산이 끊기는 순간 시장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그래서 소비자 탈팡은 상징에 그치지만, ‘판매자 탈팡’은 구조를 바꾸게 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 탈팡이 아니라 판매자 탈팡이다. 플랫폼의 힘은 소비자가 아니라 판매자에게서 나온다. 판매자가 물건을 올리지 않으면 플랫폼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판매자를 움직이는 기준은 정의가 아니라 생존이다.
정산의 안전, 지급의 확실성, 다음 달을 버틸 수 있는지의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플랫폼에서 판매자는 떠난다. 판매자가 움직이면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이것이 유통 물류 구조 혁명의 시작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판매자가 탈팡을 하기 위해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출구가 있어야 한다. 이동은 선언이 아니라 인프라의 문제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유통망, 물류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정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것이 없는 탈팡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프라를 맡을 주체다. 여기서 ‘CJ대한통운’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한통운은 이미 전국 단위의 물류망을 갖춘 사실상의 공공 인프라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은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고, 중소 판매자와의 접점도 광범위하다.
대규모 물량 이동을 양적으로, 기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기업 입장에선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소비 대중은 능력이 있는 곳에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요구는 감정이 아니라 계보다. CJ그룹은 전통적 산업 질서 안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 낸 삼성그룹으로부터 분화된 기업이다. 사회와 단절된 채 급성장한 플랫폼과 달리, 한국 산업 발전의 연속선 위에서 성장해 왔다.
기업도 기억을 가진다.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기업은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안다.
CJ대한통운이 나선다는 것은 ‘쿠팡을 대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 있는 인수인계를 맡겠다는 뜻이다. 판매자의 이동을 안전하게 받아내고, 소비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며, 유통의 혈관이 끊기지 않도록 잇는 역할이다.
단기 실적에는 불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축적하고, 한국 유통의 표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지금은 분명 사회적 재난 상황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플랫폼의 붕괴는 개인의 파산으로 치닫고 개인의 파산은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국가는 필연적으로 개입하겠지만, 언제나 사후적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쿠팡 이후의 질서를 준비하는 일이다.
쿠팡을 끝내는 것은 분명 파괴지만, 반드시 창조적 파괴여야 한다. 오랫동안 방치돼 온 불합리와 착취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다. 제조업 강국이 된 우리나라가 늦게나마 물류 유통 후진성을 극복할 기회를 맞은 셈이다.
쿠팡 이후를 설계하는 임무는 우리 공동체가 구성원들 모두에게 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CJ대한통운이 나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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