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영상 기술의 발전은 영화와 영상 예술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제작비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상상력의 물리적 한계는 급격히 확장됐다. 한때 대규모 스튜디오와 수백 명의 인력이 필요했던 장면은 이제 개인 창작자도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 됐다.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이미지는 점차 '비용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영화 산업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사전 작업(프리비주얼) 단계에서의 AI 시뮬레이션, 배우의 노화를 없애는 작업(디에이징)과 디지털 더블(스턴트), 가상 배경 합성, AI 보조 편집과 색 보정까지 가능하다. AI 영상 기술은 제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이자, 새로운 연출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현실의 제약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장면이 다시 가능해졌고, 이는 곧 표현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이은준 경일대 교수 |
인공지능(AI) 영상 기술의 발전은 영화와 영상 예술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제작비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상상력의 물리적 한계는 급격히 확장됐다. 한때 대규모 스튜디오와 수백 명의 인력이 필요했던 장면은 이제 개인 창작자도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 됐다.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이미지는 점차 '비용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영화 산업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사전 작업(프리비주얼) 단계에서의 AI 시뮬레이션, 배우의 노화를 없애는 작업(디에이징)과 디지털 더블(스턴트), 가상 배경 합성, AI 보조 편집과 색 보정까지 가능하다. AI 영상 기술은 제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이자, 새로운 연출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현실의 제약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장면이 다시 가능해졌고, 이는 곧 표현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디에이징으로 재현한 배우 윤여정 |
예술계 역시 이를 창작의 해방으로 받아들였다. 물리적 자원과 자본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창작자가 이미지와 서사를 실험할 수 있게 됐다. AI 영상은 기술 혁신만이 아닌, 예술 생산 구조 자체를 흔드는 계기로 작동했다.
문제는 이 기술이 영화관과 전시장을 벗어나 일상으로 내려오면서 발생했다.
즉, 예술을 가능하게 한 기술이 동시에 현실도 위조할 수 있게 됐다.
AI 영상 기술의 핵심은 합성 수준이 아니다. 얼굴과 목소리, 표정과 시선, 말의 속도와 감정 반응까지.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연속된 맥락으로 생성하고 조율하는 능력에 있다.
영화에서는 이것이 '몰입'으로 작동한다. 관객은 그 장면이 가상임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설득된다. 그러나 같은 기술이 일상으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최근의 영상 피싱 범죄는 이 기술을 그대로 차용한다. 이제 범죄는 음성만 흉내 내지 않는다. 화상 통화 속 얼굴, 실시간 입 모양, 자연스러운 표정, 말투, 배경까지 동시에 작동한다. 피해자는 의심하기 힘들다. 이미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AI 영상 기술은 더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현실을 증명하던 매체 자체를 흔드는 기술이 된다.
AI 피싱 경고 포스터 |
목소리를 훔치던 범죄가 이제는 '현실 전체'를 위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과 영상은 오랫동안 신뢰의 매체였다. 사진은 기록이었고, 영상은 사실에 가까웠다. 보이스 피싱이 전화라는 단일 매체의 한계를 가졌다면, 영상 통화는 그 한계를 넘는 안전장치처럼 여겨져 왔다.
우리는 '직접 보면 믿어도 된다'는 감각으로 오랫동안 훈련돼 왔다. AI 영상 범죄는 바로, 이 감각을 정면으로 이용한다.
한동안 언론은 보이스 피싱을 경고했다.
"검사라며 전화를 걸어온다"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며 울먹인다"
이제 그 단계는 끝났다.
최근에 다양한 매체에서 보도된 AI 시대의 피싱 범죄 관련 뉴스를 보면 더 이상 목소리 하나를 흉내 내는 범죄가 아니다. 목소리, 얼굴, 영상, 상황, 맥락을 동시에 위조하는 복합 매체 범죄로 진화했다.
문제는 이 범죄가 기술적으로 정교해지면서 우리가 의심하도록 훈련된 감각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점에 있다.
"직접 봤는데요?"라는 말이 더 이상 증거가 되지 않는 시대다.
최근 발생한 AI 피싱 범죄의 피해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가 똑같았어요"
"얼굴도 영상도 실제였어요"
"지금 화상통화 중이었는데요?"
과거 보이스 피싱은 음성이라는 단일 매체에 의존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응 전략을 만들 수 있었다. 목소리가 이상하면 끊고, 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했다.
하지만 AI 피싱은 다르다. 범죄자는 영상 통화 속 얼굴, 실시간 입 모양, 주변 배경, 말투, 감정 반응까지 동시에 설계한다. 이때 피해자는 '속았다'기보다 '확인했다'고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AI 피싱은 사람을 속이는 범죄가 아니라, 사람의 확인 과정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범죄다.
그래서 피해자는 속았다는 기억보다 '정상적인 판단'을 했다는 기억을 남긴다. 이 점이 AI 시대 범죄의 가장 위험한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AI 영상 피싱이 사용하는 구조가 영화와 영상 예술이 관객을 몰입시키는 방식과 동일한 구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고, 의심이 생기기 전에 다음 장면을 제시하며, 관객이 멈출 틈 없이 반응하도록 만든다. 영화에서는 이것이 연출이고, 범죄에서는 조작이다. AI 영상 기술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기술은 그저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장면을 생성할 뿐이다. (2편에서 계속)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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