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학생들이 14일(현지시간) 테헤란의 영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이란 진압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저격수들이 시위대에 실탄 발사는 기본, 확인사살까지 한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란 내 유혈사태가 격화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모두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평소 이란과 앙숙이었던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내 소요사태가 절호의 기회일듯 한데, 오히려 미국의 군사 개입을 만류하고 있다. 여기에는 외부에 전해진 바와 달리, 이란 신정정권이 아직 힘을 유지하고 있다는 판단이 있다.
“내부 균열 없는 정권...왕조 축출했던 1979년과 달라”
이란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반(反) 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이달 초부터 인터넷과 전화 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신망을 전면 차단했다. 이 조치로 외부에서 이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와중이지만, 전문가들은 정권 내부 결속력이 예상보다 단단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발리 나스르 미 외교협회(CFR) 위원은 영국 매체 가디언에 “이란 정권 내 이탈이나 분열의 징후는 없다”며 “시위대가 우위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군중은 상대방이 무너질 때 승리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강압적인 진압에 맞서 시위가 봇물터지듯 확산되고 있다는 정황도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이 타키 CFR 선임연구원은 “(반 정부 시위가) 아직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았으며, 많은 이들이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강압정치와 지도층의 부패에 국민적 분노가 일어, 팔레비 왕조를 축출했던 1979년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샤(Shah·국왕)가 잠재적 경쟁자를 막기 위해 군과 엘리트·관료집단 등을 서로 견제하게 했고, 이 때문에 위기 시 정권을 지켜줄 ‘충성파’가 부족했다. 엘리트 집단은 혁명 발발 직후 대부분 자금을 챙겨 해외로 도피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직 이란의 신정정권 내부는 균열이 없고, 이에 시위가 극렬해져도 정권 붕괴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의 진단과도 일치한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은 최근 미국 행정부에 아직 미국의 군사 공격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릴 만큼 이란 체제가 약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 국가들은 이란 정권이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자며,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보류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이스라엘 배후설’ 프레임도 부담
이란 신정정권이 이번 시위를 ‘이스라엘의 사주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하고 강경대응하는 상황도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이 관여하기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시위가 격화되자 개혁파로 분류됐던 정부 요인들마저 강경파로 돌아서며 시위대에 ‘무관용’ 대응을 하고 있다. 일부 개방 정책을 추진했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나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유화책을 폈던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도 강경진압 방침과 외부세력 개입시 보복 원칙을 천명했다.
이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최고국가안보회의 등 핵심 권력층이 이번 사태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사주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한데 따른 것이다.
핵심 권력층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이번 소요사태의 배후로 지목하며 국가안보를 수호하겠다는 말로 지지층 결집을 꾀하고 있다. 이란의 신정체제를 수호하는 IRGC의 모하마드 파크푸르 총사령관은 14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프레스TV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가리켜 “이란 청년들과 국가 안보 수호자들 살해범”이라고 비난하며 “우리는 강한 이란을 겨냥한 백악관과 텔아비브 통치자들의 음모를 무산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고, 이스라엘이 여기에 호응하는 것은 기존 핵심 권력층에 정치적 명분을 강화해줄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걸프 국가들이 주저하는 가운데, 유혈사태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가디언은 14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약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과거의 소요 사태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억압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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