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보고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한 기관의 인재 영입 사례를 칭찬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김기환 칭화대 교수를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으로 영입한 것을 거론하며, 다른 기관들도 이런 성과를 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IBS에서는 ‘영입’이 아닌 ‘이탈’ 이야기도 나왔다. IBS CI(Chief Investigator)인 김재경 교수가 올해 12월 31일까지만 IBS에서 연구그룹을 운영하고 카이스트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수학으로 생명·의학 현상을 푸는 수리생물학의 권위자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를 받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한 뒤 카이스트에 합류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산업응용수학회(SIAM) 기조강연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됐고, 그가 개발한 수면 가이드 알고리즘은 삼성 갤럭시 워치에도 적용됐다.
이런 성과를 내온 김 교수의 그룹은 지난해 IBS 내부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IBS 관계자는 “평가 결과가 좋더라도 제도상 연장 옵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성과가 막 나오는 상황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카이스트-IBS 협약(MOU)에 따라 ‘겸직 최대 5년’ 규정을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IBS는 2011년 설립된 정부 지원 연구기관으로, 대형·장기·집단 기초연구를 표방한다. 다만 IBS는 대학처럼 학위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은 대학 소속으로 입학해 학위를 준비하고, 연구는 IBS에서 하는, 두 기관에 걸친 구조가 흔하다. 이때 교수의 겸직은 접착제 역할을 한다. 학생은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연구는 IBS에서 이어지며, 연구원은 IBS와 고용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겸직이 끝나는 순간, 연구그룹의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뀐다. 고용과 공간, 채용과 학생 지도 체계가 함께 흔들린다. IBS 관계자는 “종료 시점이 되면 IBS와 고용계약을 맺은 연구원들의 계약도 정리될 수 있다”고 했다. 연구는 당장 멈추지 않아도 속도와 집중력이 떨어지고, 팀원들의 진로 선택은 앞당겨진다.
김 교수는 “겸직을 이어가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며 “5년도 양 기관이 많이 배려해 준 것이고, 다른 연구자들은 5년 겸직했다 하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했다. ‘5년이 배려’라는 것은, 그만큼 제도가 경직돼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구본경 IBS 단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김재경 CI 같은 우수한 동료가 IBS를 떠나는 상황을 보고만 있는 것은 아주 한스러운 일”이라며 “한 연구자가 어디 소속이냐를 따지는 싸움이 아니라, 기관의 경계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제도를 손보자”고 주장했다.
물론 반론이 있다. 겸직을 길게 허용하면 이해충돌이나 형평성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무제한이 아니라 ‘조건부’다. 해외처럼 두 기관이 급여·평가·지도 책임을 나누는 공동(교차)임용을 표준화하고, 성과평가와 이해충돌 점검을 전제로 연장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학생 소속과 지도 체계를 끊기지 않게 잇는 규칙, 전환기 인력·공간의 완충 안전망도 필요하다.
인재를 데려오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는 장기전이고, 장기전의 승패는 영입이 아니라 ‘유지’에서 갈린다. 지금처럼 ‘이번엔 배려로 해결하는 방식’은 다음 번에 같은 문제를 다시 만든다. 5년 뒤를 정리의 시간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으로 바꾸는 규칙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대형·장기라는 구호가 연구실 현장에서 실제 제도로 작동한다.
홍아름 기자(arh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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