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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한장] ‘순백의 숨소리’ 들리시나요?

조선일보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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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5㎝ 안팎의 눈으로 순백의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인제군 제공

지난 11일 오전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5㎝ 안팎의 눈으로 순백의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인제군 제공


새해의 첫눈이 밤사이 숲을 덮고, 아침은 조심스럽게 자작나무숲의 문을 열었다. 아직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길 위로, 하얀 숨결 같은 눈이 고요히 눌러앉아 있다.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아, 겨울이 가진 투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작나무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검은 무늬가 새겨진 흰 몸통은 눈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담백하고, 곧게 뻗은 선들은 숲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악보처럼 만든다. 바람이 스치면 보이지 않는 음표가 흔들리고, 숲은 소리 없는 합주를 시작한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겨울, 차가운 공기 속 난롯가 같은 느낌의 음악이 들려온다. 겨울 클래식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이 들려오는 느낌이랄까?

눈 내린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인제군

눈 내린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인제군


눈 위로 떨어진 빛은 차갑지만 따뜻하다. 가지를 잃은 나무들 사이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눈을 반사하며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그 빛은 겨울의 냉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새해를 맞이한 첫 약속처럼 조용한 희망을 건넨다.

숲 한가운데 서 있으면 시간의 감각이 느려진다. 바쁘게 흘러가던 하루와 지난 계절의 소음은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한다. 오직 눈이 눌리는 소리, 숨이 얼어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감각만이 현재를 증명한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는 충분한 위로가 있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일대가 전날 내린 눈으로 환상적인 겨울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인제군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일대가 전날 내린 눈으로 환상적인 겨울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인제군


자작나무 숲의 겨울은 끝이 아니라 여백이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 새해 첫 아침, 이 숲이 보여주는 신비로움은 그래서 더욱 깊다. 하얗게 비워진 풍경 속에서, 마음 또한 조용히 정돈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 고요한 시작이, 곧 다시 자라날 수많은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다가오는 주말, 다시한번 자작나무 숲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일출. /인제군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일출. /인제군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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