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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귤과 겨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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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제 셰프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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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어진 겨울 방학으로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근심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보통 2월이면 끝나던 겨울 방학이 3월 초까지 이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긴 방학으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큰 고민거리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한창 먹을 나이라 간식거리도 충분히 구입해놔야 할 것 같다.

겨울방학 간식을 떠올려보면 귤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날이 추워지면 시장 과일가게엔 하얀 합판으로 만든 박스에 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당시는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과일이 드물었으니 오직 귤이 따뜻한 봄이 오기 전 먹을 만한 선택이었다.

겨울의 대표적 과일인 귤

서울 마포구 농수산물 시장을 찾은 시민이 귤을 맛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 마포구 농수산물 시장을 찾은 시민이 귤을 맛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방학식을 마치면 먼저 생활계획표를 그리고 나서 따뜻한 아랫목에 들어가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배가 출출하면 부엌으로 들어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귤을 가져와 까먹곤 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쉬시던 날에는 마른오징어가 더해졌다. 직화 가스 불 위에 올라간 오징어는 둥글게 말린다. 다리 부분은 좀 더 다이나믹하게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에 당시 코미디언들이 종종 오징어를 따라 한 동작으로 웃음을 만들곤 했다.

오징어를 실컷 뜯고 나면 목이 마르기도 해서 귤로 손이 가게 된다. 물론 짭짤한 오징어에 상큼한 귤이 바로 섞이면 순간 예상하지 못한 쓴맛이 난다. 마치 밀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에서 한동안 두 갈래의 물이 충돌하듯 말이다.

간식으로 오징어와 귤을 함께 먹을 때 느꼈던 묘한 충돌

귤 맛이 묘하게 변하는 방법을 알려준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는 제주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아래 동생들과 어린 시절을 지냈다고 한다. 종종 밭에 나가 일하는 부모님을 따라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귤을 챙겨갔다. 부모님 일이 끝날 때까지 들판에서 불을 피워놓고 놀다가 배가 고플 땐 불 아래에 귤을 구웠다고 한다.


처음 이 얘기를 듣고 구워 먹는 귤에 호기심이 났다. 쉬는 시간에 주방에 있던 그릴에 귤을 올려 살짝 색이 날 때까지 구웠다. 구운 귤 맛은 마치 따뜻한 귤차를 씹어서 먹는 것 같았다. 또 단맛도 더 살아나고 먹고 나서 속도 편해졌다.

구워 먹는 귤은 제주의 오랜 간식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데 귤이 등장하는 건 왜일까. 예전 방학 때 할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로 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가면 망사 포장에 쌓인 귤을 구입하곤 했다. 긴 고속버스 여행에서 하나씩 목마를 때 까먹다 보면 5~6시간 정도 걸리는 여행의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으면 귤을 까는 놀이도 하곤 했다. 가운데 들어가는 쪽부터 귤 껍질로 긴 코끼리 코를 만들고 옆쪽은 넓적한 코끼리 귀가 된다. 그러다 보면 손톱이 온통 노랗게 물들어 버릴 때도 있었다.

긴 버스여행의 추억을 함께했던 망사주머니 속 귤

이렇게 귤과 보낸 추억은 내게 꽤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며칠을 먹어도 지루하지 않은 귤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집에 사둔 귤이 있으실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눈이 보슬보슬 내릴 때 오랜만에 귤과 얽힌 추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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