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예금보험공사가 추진해온 ‘달러 예금 보호막’ 구축 계획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초 외화예금 급증과 금융 불안 시 환율 급변에 대비하기 위해 달러 자산을 쌓겠다고 나섰지만, 환율이 1470원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실제 집행은 사실상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예금자보호용 달러 쌓아야하는데…예보 ‘울상’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예보기금 운용 방식을 손질하며 2027년까지 전체 예보기금의 10%를 달러 자산으로 편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4년 말 기준 예보기금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약 2조267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외화예금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 부실과 환율 급등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외화예금 지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실제 달러 자산 확충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예보가 확보한 달러 자산은 약 5800억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예보는 계획 초기 단계에서 5000억원 규모의 미국 국채를 매입했고, 이후 지난해 연중에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300원대까지 내려왔던 시점에 800억원을 추가로 매입한 것이 전부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예금자보호용 달러 쌓아야하는데…예보 ‘울상’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예보기금 운용 방식을 손질하며 2027년까지 전체 예보기금의 10%를 달러 자산으로 편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4년 말 기준 예보기금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약 2조267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외화예금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 부실과 환율 급등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외화예금 지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실제 달러 자산 확충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예보가 확보한 달러 자산은 약 5800억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예보는 계획 초기 단계에서 5000억원 규모의 미국 국채를 매입했고, 이후 지난해 연중에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300원대까지 내려왔던 시점에 800억원을 추가로 매입한 것이 전부다.
이후 환율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달러 자산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70원대를 웃돌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이 고점에 근접한 상황에서 대규모 달러 자산을 매입할 경우 향후 환율 하락 시 평가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보는 달러 자산 확충이 지연되는 배경과 관련해 “미국 국채 매입 방식이기 때문에 환율만이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며 “환율뿐 아니라 미국 국채 금리 추이에 따른 평가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매입 시점과 환율 흐름을 종합하면, 고환율 부담이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달러 자산 편입 계획이 환율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환율 급등 국면에서는 실행이 쉽지 않은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셈이다.
문제는 외화예금 규모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불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금융권 전체 부보예금(정부가 보호하는 예금)은 3000조원 가운데 외화예금은 14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화예금 역시 부보예금에 포함돼 금융회사 파산 시 예보가 대신 지급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지급은 달러가 아닌 지급 시점 환율을 적용한 원화 기준으로 이뤄진다. 환율이 급등할수록 예보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달러예금에 돈 몰리니, 금리 낮추는 은행들
달러예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 국내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12일 기준 669억5100만달러로 연말 대비 소폭 줄었지만, 이는 일시적인 조정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8일 기준 잔액은 679억7210만달러로 연말보다 1조원 넘게 늘었고, 원화 약세가 두드러졌던 지난해 10~11월 이후 연말까지 전반적인 증가 흐름이 이어졌다. 달러보험 판매액도 지난해 말 기준 1조9288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외화 관련 수요가 확대되자 은행권은 관련 상품의 매력을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15일부터 해외여행 특화 상품인 ‘위비트래블 외화예금’의 달러 금리를 연 1%에서 0.1%로 대폭 인하했고, 신한은행도 16일부터 달러예금 금리를 0.0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의 ‘국민UP외화정기예금’ 금리 역시 이달 초보다 소폭 하락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주요 은행들을 대상으로 외화예금과 보험에 대한 과도한 영업을 자제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소비자 위험을 적극 안내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화예금 보호 체계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외화예금은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달러 재원은 고환율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보 내부에서도 계획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분위기다. 예보는 오는 2월 예정된 예보기금 운용 심의 과정에서 달러 자산 편입 속도와 방식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기존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단계적 조정이나 운용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외화예금 보호를 위한 ‘달러 예금 방패’ 구상이 환율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가운데, 고환율 국면에서 금융 안전망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도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화예금이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율 급등과 금융회사 부실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를 가정한 안전망 설계가 충분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달러 자산을 얼마나, 어떤 속도로 쌓을지뿐 아니라 환율 변동성이 극심한 국면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