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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0대를 위한 음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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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오십이 되던 해, 불운의 만기적금을 타는 기분이었다. 체불 임금과 퇴직금을 못받았다. 전세사기도 당했다. 법의 도움을 받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악의와 합리화 앞에선 법의 힘도 완벽하진 않았다. 정신은 피폐해지고 통장은 말라갔다. 나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제 아무리 유명한 동기부여 강사가 맨투맨으로 붙어도 당시의 나에겐 무용지물일 게 틀림없었다.

힘든 시절이 없던 건 아니다. 차비가 없어 홍대앞에서 파주까지 걸어다닌 때도 있었다. 자취방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고단할 뿐이었다. 괴롭지는 않았다. 잃을 게 없고, 책임질 일도 없었던 나이였다. 오십 살이 되고 보니 반대였다. 책임질 일이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처럼 돌아왔다. 버티는 시간 안에서, 고단했던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뭘로 버텼더라. 음악이었다. CD 몇 장을 들으며 밤새 걸었다. 자취방에서 쫓겨나며 그 심정을 달래줄 음악을 생각했다. 오십 살, 위기에 처한 중년 남자에 대한 음악은 뭘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도 정작 김 부장을 위한 주제가는 없었는데.

스무 살에 대한 노래는 많다. 대부분 발랄하다. 발랄하지 않은 스무 살을 위해선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의 ‘스무살’을 추천할 수 있다. 서른살? 그 어떤 노래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이길 수는 없다. 마흔 살,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 있다. 50을 위한 곡으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최백호가 이 노래를 발표했던 때는 1994년이다. 40대 중반이었다. ‘서른 즈음에’도 같은 해에 나온 곡이다. 그 때 오십대를 맞은 뮤지션이라고 소감이 없었을까. 1994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28.8세였다. 젊었던 한국 사회에서 50대 가수는 이미 원로 취급을 받았다. ‘가요무대’에 나가서 옛 노래를 부를 뿐, 신곡을 발표할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2026년, 한국 중위연령은 46.7세다. 오케이, 지금이야말로 50대를 위한 ‘서른 즈음에’가 나올 때 아닐까? 순진한 질문이다. X세대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던 연예인들은 지금도 전성기다. 팬들과 함께 늙어왔다. 다만 그들도 팬들도 나이 들어가는 걸 드러내지 않는다. 중년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니 인식을 바탕으로 나올 창작물도 없다. 나온다 하더라도 누가 환영할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어떻게든 젊어 보이고 싶어하는 시대 아닌가.

음악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에게 아내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링크를 건네줬다. 자신의 처지가 괴롭다는 젊은이에게 스님은 괴로움과 즐거움은 공존하는 것이라 말했다. “진정한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예요. 열반입니다. 열반의 해석은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예요.” 열반, 너바나(Nirvana)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너바나를 들으려 CD를 뒤적거렸다. 먼지 쌓인 음반을 꺼내다가 커트 코베인의 수명보다 두 배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더욱 괴로워졌다. 열반에 이르진 못해도 괴로움을 벗 삼고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나이인가 보다. 당신도 그렇게 살듯이.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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