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되어 있다. /뉴스1 |
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된 삼양사 대표와 CJ제일제당 전·현직 임직원들이 지난 13일 열린 첫 공판에서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대기업 형사재판에서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전면 부인→법리 공방' 흐름과는 다른 대응이다.
이들 기업은 앞서 2007년에도 담합에 적발돼 2011년 대법원까지 다툰 끝에 벌금형이 확정된 바 있다. 과거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처럼 첫 공판에서 혐의를 곧바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법조계에서는 서민 부담을 키우는 기업 간 담합을 강경 대응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를 의식한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류지미 부장판사)은 지난 13일 삼양사와 CJ제일제당 법인, 그리고 전·현직 임직원 11명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CJ제일제당 측 변호인은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양사 측 변호인도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다만, 일부 피고인은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이 있어 공소 사실을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李 “물가 담합 대응 철저”... 검찰 자체 수사도 부담
이번 사건은 국내 설탕 시장에서 가격 담합 의혹으로 기소된 첫 대규모 형사 사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없이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점도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이들 기업이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설탕 가격의 인상·조정 시기와 폭을 사전에 합의한 것으로 봤다. 담합 규모는 약 3조2715억원으로 추산된다.
통상 대기업이 관련된 형사재판에서는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 사안일수록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방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은 재판 초반부터 혐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조계에선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9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배경으로는 정부의 강경한 물가 대응 기조가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평소 “물가 안정이 곧 민생 안정”이라는 국정 철학 속에,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생필품 가격 급등과 관련해) 업체 간 담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관계 부처에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한 바 있다.
여기에 공정위가 2024년 3월부터 관련 조사를 진행해 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정위는 다음 달 중 설탕 가격 담합 의혹을 전원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전원회의는 공정위 최고 의결 기구로 법원의 1심에 해당하는 곳이다. 과징금 등 제재 여부가 이곳에서 결정된다.
앞서 2007년에도 CJ와 삼양사, 대한제당 등 3사에 같은 혐의로 총 5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 벌금형이 2011년에 확정됐다. 긴 법리 공방을 벌인 셈이다.
정부와 공정당국의 기조가 분명한 상황에서 혐의를 끝까지 다투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기조와 정면으로 맞설 경우 여론과 정책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도 수사 초기부터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제당, 리니언시로 무리 이탈... 유리한 양형 전략
여기에 대한제당이 ‘리니언시(자진 신고 감면 제도)’ 적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다. 리니언시는 담합에 가담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담합 사실을 신고할 경우 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해 주는 제도다.
당초 이번 사건은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이 연루된 설탕 가격 담합 의혹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대한제당이 1순위로 리니언시를 신청했고 검찰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리니언시 1순위 기업에 기소를 면제해 줄 수 있다.
담합 사건의 특성상 한 기업이 리니언시에 나설 경우 거래 구조와 가격 합의 정황이 상당 부분 드러나, 나머지 기업들이 혐의를 부인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한 곳의 자백’으로 수사 방향이 굳어진 상황에서, 무죄를 다투기보다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고 양형에서 유리한 사정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재판부는 피고인이 여러 명이고 구속 상태임을 고려해 기업별로 공판을 분리해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CJ제일제당 관련 피고인들은 2월 12일 증거 인부 절차를 진행하며 증인신문은 3월 9일과 4월 9일 예정됐다. 삼양사 측 공판은 3월 26일 진행될 예정이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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