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부지방에만 사는 고유종 산개나리.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
전세계에서 한반도에만 사는 생물들이 있다. 1919년 북한산에서 처음 발견된 산개나리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이다. 다른 개나리와 달리 잎과 줄기에 보송한 솜털이 있고 꽃잎이 가느다란 특징을 지녔다. 그 희소성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산개나리를 멸종 취약종으로 분류한다. 우리 정부 역시 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북한산국립공원에 특별보호구역을 조성하는 등 복원 사업에 힘써왔다. 10년 넘게 이어온 복원 사업이 성공적이란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2100년께엔 서울에서 산개나리를 보기 힘들어진다. 산개나리뿐 아니라 한국의 기존 식물 절반 이상이 사라질지 모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차례에 걸쳐 ‘기후변화 대응 생물다양성 평가 및 변화 예측 연구’를 진행했다. 기후변화로 서식지 환경이 급변하는 경우 이동성이 제한된 식물이 어떻게 될지를 종 다양성 측면에서 접근한, 그간 보기 힘들었던 연구다. 결과를 보면, 탄소중립을 방치할수록 생물다양성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주로 특정 지역 내 생물의 ‘계통학적 거리’를 이용해 생물다양성을 평가했다. 두 지역에 각각 5종의 나무가 산다면 ‘종의 풍부함’ 면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ㄱ지역이 소나무·잣나무·전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 등 한쪽 계통으로만 이뤄졌고, ㄴ지역이 소나무·함박꽃나무·거제수나무·쥐다래·들메나무 등 여러 계통들로 이뤄졌다면, 계통학적 다양성이 높은 ㄴ지역의 생태계가 더 건강하다고 평가받는다.
서울 소재 5개 산(관악산·남산·인왕산·북한산·수락산)에 있는 1008개 식물종의 2100년 미래를 예측해보니, 탄소중립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시나리오에선 65.2%가 살아남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43.5%만이 살아남았다. 기후변화를 방치하면 서울 산의 식물종 절반가량이 절멸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또 식물종을 기후변화 취약도에 따라 4~5개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가장 취약한 등급은 모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 절멸이 예측됐다. 이 등급엔 산개나리(서울)와 함께 오동나무(제주도), 은꿩의다리(가거도·여서도), 쐐기풀(서울·제주도), 털중나리(제주도), 호두나무(서울·제주도) 같은 식물이 속했다. 이 중 산개나리, 오동나무, 은꿩의다리, 털중나리 같은 식물은 한반도 고유종이다. 기후변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세기말 한반도엔 개나리, 개망초, 코스모스, 무궁화, 민들레 같은, 기후변화를 버텨내는 튼튼한 1등급 종들만 남는다. 취약종에 대한 보호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행정구역별로 생물다양성 감소를 예측해보니, 거의 모든 권역에서 생물다양성이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중간 수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2050년까지 생물다양성이 줄어들지 않는 곳은 강원도뿐이었고, 충청남도는 생물다양성이 2.63%나 감소했다. 계통학적 생물다양성 손실이 가장 클 상위 10개 지역 중 7개 지역이 경기도권이었다. 이에 견줘 강원도권에선 계통학적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행정구역이 3개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종은 분포 범위가 북상하며, 결국 위도가 높고 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은 강원도 지역에 식물들이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연구를 총괄한 오현경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보전연구과장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생물다양성 변화 연구는 구상나무 등 특정 종을 상대로 한 연구가 있을 뿐 다수 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 기후변화에 취약한 종과 그 지역을 파악하고 보전 대책을 수립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외래종 유입은 예측이 어려워 이 변수를 제외한 것이 연구의 한계”라고 했는데, 아열대 식물의 유입 경로가 워낙 다양해 일단 현존 식물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만간 한반도에서 기존 식물 절반이 사라지는 때가 오면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아열대 식물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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