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연장에서 김솔씨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4학년인 김씨는 선천적 장애로 왼손 사용에 제약이 있어, 오른손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연주법을 만들어왔다. 오는 31일 서울대 음대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장경식 기자 |
“음(音)이 비는 순간은 흐름과 호흡으로 메웁니다. 음악이 더 아름답게 전달될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음대 캠퍼스에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수업이 끝나 아무도 없는 강의실 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건반을 눌렀다. 오른손이 연주의 중심이었고, 왼손은 필요한 순간 보조적으로 움직였다. 그럼에도 선율은 막힘 없이 차분했다.
연주자는 서울대 음대 4학년 김솔(26)씨다. 그는 선천적 장애로 왼손 사용에 제약을 안고 태어났다. 오는 31일 열리는 독주회를 위해 그는 매일 밤늦게까지 건반과 씨름한다. 메인 곡은 쇼팽의 ‘발라드 1번 사단조’. 극적인 전개와 화려한 테크닉으로 유명한 곡이다. 김씨는 “내가 가진 개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이 곡을 골랐다”고 했다.
김씨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건 여섯 살 때다. 클래식 애호가인 부모 곁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동네 학원들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한번 해보자”는 스승을 만났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몸의 균형을 잡는 것도 버거웠다. 스승은 김씨가 칠 수 있도록 악보를 일일이 고쳐 그려줬다. 여러 날 씨름한 끝에 오른손을 중심으로, 왼손을 보조적으로 활용해 음을 잇는 자신만의 연주법을 익혔다. 김씨는 “처음부터 안 된다고 단정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연주법을 함께 고민해준 이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아 중학교를 자퇴했다. 그는 홈스쿨링 끝에 필리핀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장애인이 음악 하기는 어렵다’는 편견이 늘 그를 짓눌렀다고 한다. 이후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인하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택한 ‘현실적인 길’이었다.
김씨 인생의 반전은 2022년에 찾아왔다. 혹시 몰라 나갔던 아마추어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김씨는 “어릴 적 처음 건반을 두드렸던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그해 말 로스쿨을 그만두고 서울대 음대에 도전했다. 입시 곡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연습해온 곡이었고,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음대 생활은 또 다른 산이었다. 양손 화음을 전제로 한 곡들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김씨는 기술적 완성도 대신 ‘해석과 표현’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왼손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매카시를 롤모델로 삼았다. 김씨는 “매카시처럼 나만의 연주 방식을 찾고 싶다”며 “화려한 기교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김씨 독주회는 31일 오후 5시 서울대 음악대학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서울대 음대가 학생 연주자에게 단독으로 홀을 내어준 건 이례적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김씨의 도전 정신과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김씨는 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할 예정이다. 여러 지병이 겹치며 장시간 연주가 점차 버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설령 무대에 서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론을 공부하며 평생 음악 곁에 머물겠다”고 했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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