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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아라비안 舞飛 나이트] [2] Slow down

조선일보 이미도 작가·외화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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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늦춰라
문학은 위대합니다.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는 특히 창조적 변화의 도구로 ‘새로운 눈’을 꼽았습니다. 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이 통찰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출처입니다. “발견을 위한 진정한 탐험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Two Seasons, Two Strangers·사진)’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Two Seasons, Two Strangers·사진)’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Two Seasons, Two Strangers·사진)’의 전반부 첫 장면에서 한국인 각본가 ‘이(李, 심은경)’가 영화 각본을 씁니다. 카메라가 그의 공책과 더디게 움직이는 연필을 비춥니다. 낯선 두 청춘 남녀가 여름 해변에서 고독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평면적 서사입니다. ‘언어의 동굴’에 갇혔다고 느끼는지 ‘이’가 시사회장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별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동굴에서 탈출하려고 그가 여행을 떠납니다.

후반부 45분은 겨울. 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처럼 기차가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세상이 온통 새하얗습니다. 겨울 편 주제문도 프루스트의 통찰이 걸맞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춰라(Slow down).” ‘새로운 눈’을 갖길 원한다면 꼭 실천해보라고 그가 강조했거든요. 가속과 번잡이 일상화된 도시 생활을 뒤로 물리고 외딴 산골 여관에서 ‘이’는 느린 삶을 실천합니다. 천지사방 낯선 곳에서 촉발된 호기심은 자연과 사물에서 경이와 아름다움을 읽어냅니다. 좋은 작품은 슬픔을 얼마나 잘 묘사하는가에 달렸다는 깨달음도 얻고요.

‘이’가 영화 맨 끝에서도 각본을 씁니다. 연필 움직임이 훨씬 빨라집니다. 혹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새로운 눈으로 관찰한 자기 경험담은 아닐까요? 극중극인 여름 이야기 창작 때와 딴판으로 카메라가 새 각본 내용을 가립니다. 제 상상이 맞는다면 이 각본은 여름 이야기보다 훨씬 입체적인 서사가 촬영된 후반부 45분의 원작일 것만 같습니다.

[이미도 작가·외화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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