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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왜 우리는 받은 만큼 주는 걸 아까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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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짠 음식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생물의 생존에는 소금이 꼭 필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소금 혹은 염분을 전혀 보충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은 지구상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금, 그러니까 나트륨(Na) 하나와 염소(Cl) 하나가 더해져 만들어진 이 단순해 보이는 화합물은 생물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특히 소금의 구성 성분 중 하나인 나트륨은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절하고, 인체의 각 조직들이 주고받는 신호의 근간이 된다.

그래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은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에 나트륨을 운반하는 데 이용하는 채널과 펌프들을 대량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우리 몸의 세포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나트륨 채널을 통해 세포 안으로 나트륨을 쏟아붓고, 다른 편에서는 기껏 세포 안으로 들어온 나트륨을 부지런히 퍼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나트륨 채널과 펌프는 나트륨을 세포 안팎으로 운반한다는 기본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체의 세포는 비옥한 논과 같다. 벼농사가 잘되려면, 논바닥은 항상 적정한 양의 물로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논둑이 넘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부지런한 농부는 항상 논둑을 살펴 물꼬를 손보고 수위를 가늠하기 마련이다. 인체 세포에서 나트륨 채널은 수문이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의 수문을 열면 물이 저수지에서 논으로 한꺼번에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나트륨 채널이 열리면 세포 밖에서 세포 안으로 나트륨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일단 수문만 열어 놓으면, 수원이 마르지 않는 한 물은 저절로 흘러 들어간다. 논에 공급된 물이 벼를 자라게 하듯, 나트륨 채널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 나트륨은 각 세포들을 일깨워, 신경세포가 신호를 전달하게 하고, 근육세포가 수축해 힘을 내게 하며, 심장세포가 박동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나트륨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는 것이 좋다. 저수지의 수량이 부족하면 논바닥은 쩍쩍 갈라질 테고, 반대로 과하면 논이 잠겨버릴 테니, 둘 다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할 것이므로.

하지만 나트륨이 아무리 세포 작동에 필수적인 요소라 하더라도,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다. 논은 개방된 구조라 유입되는 물이 많으면 그저 넘칠 뿐이지만, 세포는 닫힌 구조이기 때문에 나트륨이 많이 흘러 들어오면 삼투압이 증가해 세포가 뻥 터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세포들은 나트륨이 세포 내로 흘러 들어오면 동시에 이를 부지런히 퍼내기 시작한다. 나트륨 채널이 인체 세포라는 논에 물을 대는 수문이라면, 나트륨 펌프는 말 그대로 옛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데 사용했던 일명 ‘작두 펌프’와 비슷하다. 작두 펌프는 힘을 들여 손잡이를 누를 때만 작동하며, 그것도 한 번 누를 때마다 딱 한 바가지만큼의 물만 올라온다.

마찬가지로 세포의 나트륨 펌프는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인 ATP를 소모해야 하며, 1개의 ATP를 사용할 때마다 3개의 나트륨을 퍼낸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수십조개이고, 각각의 세포마다 적게는 수십만개에서 많게는 수천만개의 나트륨 펌프가 쉴 새 없이 작동하니 여기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은 엄청나다. 사람 기초대사량의 약 20~30%가 오로지 이 나트륨 펌프를 작동시키는 데만 소모될 정도로 말이다. 나트륨 채널이 자동적이고 수동적이라면, 나트륨 펌프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나트륨 펌프는 세포가 터지지 않도록 유지시킬 뿐 아니라, 세포막의 전위차를 만들어 사방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세포를 정비시키고, 펌프를 작동할 때 나오는 힘으로 세포 내 찌꺼기를 배출하거나 크기가 커서 운반하기 어려운 영양소들을 세포 내부로 옮겨주면서 세포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머리로는 등가교환을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마음으로는 늘 자신이 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내 떡보다 늘 남의 것이 더 커보이기 마련이니, 받은 만큼 돌려 주는 것조차도 아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세포는 참 바보같이 사는 셈이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받아들인 것을, 다시 힘을 들여 내보내며 살아가니 말이다. 어쩌면 베푸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보다 늘 더 힘들고, 더 적극적이어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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