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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실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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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전설을 꼽으라면 마일스 데이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재즈가 타성에 빠질 때마다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전위적인 혁신가였다. 쿨 재즈, 모달 재즈, 재즈 퓨전 등. 장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끊임없이 진화하길 원한 음악가였다. 그가 없었다면 재즈의 역사책은 꽤 진부해졌을 것이다. 만약 진보적인 예술의 첫 번째 의무가 새로운 대중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그는 당대에 가장 진보적인 예술가였다.

그렇다면 조건이 따라붙는다. 실수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과학자 아인슈타인 역시 실수에 대해 이런 명언을 남겼다. “그것이 가치 있는 문제라면 최초로 구상한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 말은 아인슈타인이 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근거는 없다. 유사한 주장을 펼친 적은 있다. 아인슈타인은 1946년 뉴욕타임스와의 원자력 관련 인터뷰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은 필수”라고 말했다. 실제 발언은 인류 생존에 대한 경고였지만 문장에 살이 붙으면서 문제 해결에 실수는 필연임을 뜻하는 격언으로 쓰인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창작 비결 또한 비슷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재즈에는 실수가 없다. 오직 기회만 있을 뿐.” 196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연의 에피소드는 이 말이 결코 수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연주 도중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의 손가락이 순간 미끄러지며 잘못된 코드를 강하게 쳐버렸다. 허비 핸콕은 훗날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 코드가 썩은 과일 조각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마일스의 걸작을 망쳐버렸구나.’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죠.”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연주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 뒤, 허비 핸콕이 친 틀린 코드가 마치 처음부터 예정돼 있던 진행인 것처럼 들리도록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이어갔다. 실수였던 소리는 단번에 ‘새롭고 창의적인 화성’으로 변했다. “틀린 음은 없다. 그다음에 어떤 음을 연주하느냐가 그 음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결정한다.” 마일스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이를테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이 성실한 실패가 되기를 바랐던 뮤지션이었다. 그는 재즈에 정답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음악이 언제나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확장되기를 원했다. 비단 재즈만은 아니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깊이 감춰진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답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생각에는 품이 들고, 귀찮기 때문이다. 행여 실수할 위험을 감수하느니, 이것이 정답이라고 믿는 게 낫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위대한 발견과 발명 가운데 상당수가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


2026년 첫 칼럼이다. 어떤 주제를 쓸지 고민하다가 볼테르의 문장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모두 나약함과 실수로 만들어졌다. 서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야 한다.” 실수 하나로 인생 전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규정하고, 지워버리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여러분도 친절함의 밸브가 닫힌 채 작동하는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가 가끔은 버거울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속 문장을 읽는다. “미국인의 삶에 2막은 없다.” 만약 어른의 자격이 있다면, 타인의 실수를 분풀이 대상 삼아 타박하지 않고, 대신 감싸안을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실수를 통해 오히려 새로운 길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2막은 열릴 것이다. 마일스가 허비에게 그랬던 것처럼.

배순탁 음악작가

배순탁 음악작가

배순탁 음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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