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파이낸셜뉴스 언론사 이미지

[기고] 기술 모르면 정책은 작동 안해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원문보기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고령화와 함께 청각장애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은 약 263만명이며, 이 중 청각장애인이 16.8%다. 신규 등록장애인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이 청각장애이고, 65세 이상 인구의 약 40%가 노인성 난청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각장애는 더 이상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청각장애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회적 고립과 정보접근 차단으로 이어진다. 또 정보통신 기반 서비스 이용 격차를 확대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다. 결국 일상생활의 안전과 공공서비스 접근권, 문화 향유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히어링루프가 있다. 히어링루프는 마이크로 입력된 소리를 자기장을 통해 보청기나 인공와우로 직접 전달하는 전파 기반 보조기술이다. 별도 수신기 없이 개인 보청기만으로도 명료한 청취가 가능하고 주변 소음을 줄여주기 때문에 공연장, 대중교통 등 소음이 많은 다중이용시설에서 효과적이다. 또 재난·안내 방송 전달 등 안전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미국·호주 등은 법과 기술표준을 통해 히어링루프 설치를 의무화하고 성능기준과 검증 절차, 표지 설치, 직원 교육, 정기점검까지 연계해 디지털 접근성 인프라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관리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1월 '장애인등 편의법'을 개정해 공공시설에 보청기기 보조장비 비치를 의무화했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청각장애인 단체가 공동조사한 결과 설치된 히어링루프 90% 이상이 국제표준을 충족하지 못해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디지털·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정책이 '설치'에만 머물고, 실제 작동과 안전성까지 고려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 기반 인프라는 단순히 장비를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설치기준과 성능 검증, 지속적인 유지관리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인프라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기술적 이해와 운용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된 정책은 결국 예산 낭비와 제도 불신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다수의 기기에 음성을 동시에 전송하고 히어링루프의 설치환경 제약과 커버리지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블루투스 저전력 기반 오라캐스트(Auracast) 기술은 머지않아 실질적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활용 기술이 결합되면 개인의 청력 특성에 맞춘 음성 전달이나 환경별 소음 보정 등 더욱 진화된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 경우 기존 기술 도입을 유보할 것인지, 우선 설치한 뒤 디지털·AI 기반 기술로 단계적 전환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 판단 역시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공기관과 정책당국은 기술을 '참고 요소'가 아니라 정책 성패와 안전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 이해 없이 법을 만들고, 기술 검증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관행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안성재 두쫀쿠 논란
    안성재 두쫀쿠 논란
  2. 2임성근 셰프
    임성근 셰프
  3. 3트럼프 그린란드 합병
    트럼프 그린란드 합병
  4. 4레베카 흥국생명 3연승
    레베카 흥국생명 3연승
  5. 5서울 시내버스 노사 합의
    서울 시내버스 노사 합의

파이낸셜뉴스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