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도'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국 전통 회화 중 조선의 민화와 궁중화는 철저히 구분된다.
궁중화는 궁내 화원이 왕실의 권위와 통치의 정당성, 의례 등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정제된 미적 완성도를 선보인다. 반면 민화는 일반 서민의 삶과 소망을 소박하면서도 때로는 파격적이고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서 궁중화와 민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중 화원은 궁 바깥에 살면서 궁궐로 오가며 일했고, 돈 많은 자본가들이 이들에게 부탁해 각종 그림을 그리도록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궁중화의 도상과 형식이 민화로 스며들었다. 반대로 민화 속 생활 정서와 상상력은 궁중화에 자극을 주기도 했다.
조선의 민화와 궁중화의 미적 가치를 살피는 전시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민화와 궁중화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 27점이 출품됐다.
'쌍룡희주도' |
8폭 병풍에 담긴 궁중화 '쌍룡희주도'(雙龍戱珠圖)는 궁중화로는 드물게 용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노는 모습을 담았다.
조선 궁궐에서는 두 봉황이 구슬을 가지고 노는 '쌍봉희주' 문양이 주로 사용됐다. 용은 황제를 상징하기 때문에 조선 왕은 그보다 아래인 봉황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국이 됐고 이후 봉황 대신 용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대한제국의 역사가 짧은 만큼 '쌍룡희주'를 대형 병풍으로 구현한 사례는 흔치 않다.
'호피도' |
조선시대에 사랑받던 다양한 호랑이 그림도 만나볼 수 있다.
8폭 병풍에 화면 가득 호랑이 표피를 그린 '호피도'(虎皮圖)는 권력을 상징한다. 고위 관료가 취임하면 왕이 호랑이 가죽을 선물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속 더피와 수지의 모습이 담긴 '까치 호랑이' 그림도 만날 수 있다. 권력의 상징인 호랑이가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민중의 상징인 까치를 바라보는 호랑이의 얼굴은 공포와 위엄이 아닌, 해학적인 표정이다. 권력의 상징인 호랑이가 민중을 의미하는 까치의 외침을 듣는 정겨운 장면이다. 전형적인 민화의 형태지만 호랑이 털 표현이나 앉아 있는 모습 등은 매우 독창적이고 기술적 완성도도 높다.
'봉화공작도' |
12폭 병풍으로 가로 713㎝, 세로 169㎝에 달하는 대형 작품 '봉화공작도'(鳳凰孔雀圖)는 궁중화가 민화에 접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십장생 배경 위에 일제강점기 무렵 유행한 봉황공작도 도상이 결합했다. 민화 그림이지만 섬세한 궁중화 기법이 담겨 있다. 돈 많은 재력가가 궁중 화원에 의뢰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전경 |
한국 전통 회화를 현대미술로 확장한 작품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갤러리현대 신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화이도'는 한국 전통 회화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김남경(47), 김지평(50), 박방영(69), 안성민(55), 이두원(44), 정재은(57)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해 작품 75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과거의 도상과 이미지를 단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대 미술 언어로 확장한 작품들이 출품됐다.
김지평 작 '디바-무' |
김지평의 설치 작품 '디바-무'는 종이부적 등 무속인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의례 도구로 두 폭 병풍을 장식하고, 그 앞에 마이크를 설치한 작품이다. 무당은 종종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할머니 역시 병풍처럼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여성상이었다. 작가는 이들 앞에 마이크를 설치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돼 온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박방영 작 '본향의도' |
박방영은 전통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진주 가루, 금가루, 아크릴, 동양화 물감 등 혼합 재료를 활용해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 전시에 나온 '본향의도'는 작가의 삶을 되돌아보며 소중했던 기억의 조각들을 화면 위에 풀어놓은 대형 작품이다. 닭이나 고향집, 산과 들 등 자신에게 소중한 추억을 한 화면에 펼쳐놨다.
이두원 작 '두원기명절지도' |
이두원은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수집한 천연 재료와 한국 전통 먹을 결합해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이번에 선보인 2025년 작 '두원기명절지도'는 그의 대표 연작 '기명절지도'의 하나다. 울(양모)에 먹과 아크릴, 과슈, 자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꽃과 도자기, 과일, 소나무 등 다양한 기물과 생명체를 화면 위에 자유롭게 올려놨다.
김남경 작 '15°의 사유' |
안성민의 '공존_두 개의 세상'은 전통 민화 소재인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책꽂이를 통째로 옮겨 그린 듯한 화면 중앙에 경첩을 달아 그림 안에 또 다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책가도를 변형해 디자인적으로 구현한 김남경의 작품과 물에 비치는 일월오봉도를 통해 상하 대칭의 구조로 전환한 정재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두 전시 모두 2월 28일까지 열린다.
정재은 작 '일월오봉도' |
laecorp@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