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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온다] ④휴머노이드가 여는 '금단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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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이 갈 수 없던 곳'을 열어젖히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산소가 없거나 독성 가스가 가득한 환경, 방사선이 쏟아지는 원자로 내부, 인력 자체가 부족한 심야 간병 현장에서까지. 이 영역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가 막아놓은 '금단의 시장'이었으나 휴머노이드가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숨 쉴 필요가 없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극한 환경 진출을 이끄는 당위는 인간의 한계 그 자체에 있다. 인력 투입에 따른 물리적 제약이 로봇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점에 주목해 사업모델로 구현한 대표 사례가 미국의 언더컨트롤로보틱스(UCR)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 발키리 프로젝트 출신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이 회사는 해양 시추시설·위험 건설현장·심층 광업 등 고위험 환경만을 타깃으로 삼는다.


고위험 환경일수록 인간 활동의 제약은 곧 비용이 된다. 광업이나 해양 시추 작업에 인간을 투입하려면 개인보호장비 착용과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운영 중단이 불가피하다. 반면 로봇은 이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다. UCR은 27kg 페이로드(적재·운반 가능 중량)를 운반하고 가파른 경사면을 탐색할 수 있는 '모비(Moby)'를 개발해 현장 배치를 모색 중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극한 환경 진출을 이미 현실화한 곳도 있다. 프랑스의 캡제미니는 작년 11월 프랑스 원자력시설 멜록스에 휴머노이드 로봇 '혹소(Hoxo)'를 배치했다. 핵 발전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Spot)' 같은 4족보행 로봇이 아닌 휴머노이드가 활용된 첫 사례다. 단순 점검을 넘어 반복적인 부품 이송과 기본 정비까지 수행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사진=보스턴다이내믹스, 블룸버그통신]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사진=보스턴다이내믹스, 블룸버그통신]


또 맥킨지는 중국 시노펙 등 국영기업이 정유시설에서 휴머노이드를 점검·모니터링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정유시설은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와 폭발성 증기가 밀집한 고위험 환경이다. 인간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인간용 인프라(계단·통로·패널)에 접근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장점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위험이 가치가 되는 곳

기업은 사람을 보내기 어려운 곳이고 고비용 작업일 수록 로봇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OECD 원자력기구(NEA)에 따르면 원전 정비·점검으로 설비가 가동 중단(다운타임)되면 시간당 10만달러가 넘는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을 투입할 경우 다운타임은 길어진다. 보호장비 착용과 안전 절차를 거쳐야 하고 방사선 노출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교대 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봇은 이런 준비 과정 없이 즉시 투입할 수 있어 다운타임을 줄일 수 있다. 로봇 단가가 높다고해도 단축된 다운타임만큼 손실이 줄어든다면 도입 유인이 클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는 광업·재난 구조·원자력 정비·화학 제조 등 위험 작업에서 "고객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제조와 위험 작업에서 인력 대체율 5~15%를 가정할 경우 세계 수요는 110만~3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극한 환경의 궁극적 형태는 우주다. 일론 머스크는 2026년 말 스페이스X 스타십에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를 실어 화성에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로봇은 인간과 달리 산소·물·식량이 필요 없고, 극단적 온도 변화에도 견딜 수 있다. 생명유지 장치 없이 우주유영도 가능하다. NASA는 2023년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폴로'를 달·화성에서 우주비행사 보조 용도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돌볼 손이 없는 곳

인력이 부족해 돌봄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도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3625만 명으로 전체의 29.3%에 달한다. 간병직 구인 약 4건당 지원자가 1명에 불과할 정도로 관련 인력난이 심각하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와세다대학교는 AI 탑재 휴머노이드 AIREC를 개발 중이다. 150kg 중량의 이 로봇은 피간병인의 자세 변경, 옷 입히기 간단한 요리까지 수행할 수 있다. 2030년경 상용화를 목표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또 작년 5월 중국 유비테크로보틱스는 노인 동반자 역할을 겨냥한 2만달러 가정용 휴머노이드 출시 계획을 밝혔고 미국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는 낙상 방지용 노인보조 로봇 E-BAR를 개발 중이다. 기존 간병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력이 없어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했던 공백을 채우는 셈이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노인돌봄 로봇 시장은 2024년 29억달러에서 2033년 99억달러로 연평균 14.3% 성장이 전망된다고 한다.

휴머노이드가 여는 또 다른 '금단의 영역'은 시간이다. PwC스트래티지앤드에 따르면 인간은 연간 '약 240일×8시간' 근무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충전·정비 시간만 제외하면 연간 '350일 이상×20시간' 가동이 가능하다. 인간 대비 약 4배의 노동 생산성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피규어AI의 '피규어02'는 작년 5월 BMW 공장에서 20시간 연속 작업을 완수했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커버할 수 없었던 시간대(심야·연속 교대)를 새롭게 채우는 영역이다.

결국 휴머노이드가 만들어내는 시장은 단순한 '대체'를 넘어 '창출'로 확장된다는 설명이 나온다. 산소와 휴식이 필요 없고 방사선에도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가 닫아놓았던 문을 열고 있다. 공장과 물류창고에서의 단순 노동 대체를 넘어 애초에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없었던 곳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향후 10년 내 노인 돌봄, 경량 건설, 광업 자재 운반 같은 극한 환경 적용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ernard020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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