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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정광복의 K-자율주행 도전기…자율주행이 바꾼 자동차의 존재론

연합뉴스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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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장[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장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테슬라가 지난달 공개한 '로보밴'(Robovan) 콘셉트카는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최대 20명을 태울 수 있는 이 완전 자율주행 전기 밴에는 운전대도, 페달도 없다. 내부는 좌석 배열을 넘어 하나의 평면 공간으로 설계돼 작은 거실이나 캡슐 호텔에 가깝다.

일론 머스크는 이를 '고밀도 이동 수단'이자 화물·승객 겸용 플랫폼으로 설명했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로보밴은 더 이상 '차량'이라기보다 움직이는 방, 혹은 이동할 수 있는 생활 공간에 가깝다.

테슬라가 공개한 20인용 로보밴[테슬라 홈페이지 캡처]

테슬라가 공개한 20인용 로보밴
[테슬라 홈페이지 캡처]



사실 이 변화의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테슬라가 구상해 온 로보택시·로보밴 전략의 핵심은 차량이 스스로 차고로 돌아가 충전과 주차를 해결하고, 필요할 때 호출에 응해 사람과 물품을 실어 나르는 무인 이동 인프라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차량 내부를 캠핑카처럼 꾸미고, 차에서 자고 일하며 생활하는 '바닐라이프'(van life)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동차는 '잠깐 타고 이동하는 물건'에서 '머물고 사용하는 공간'으로 이미 성격이 바뀌고 있다. 로보밴은 이 흐름의 연장선에서, 아예 처음부터 주거·업무·휴식이 가능한 공간으로 자동차를 재설계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이 바로 자율주행이다.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순간, 차량 내부는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위계를 잃고 하나의 평면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좌석은 침대가 되고, 모니터는 업무와 엔터테인먼트 허브가 되며, 수납공간은 옷장과 서랍이 된다. 차량이 집 앞까지 스스로 찾아와 사람과 짐을 싣고 이동한 뒤, 다시 '외부의 방'인 차고로 돌아가는 흐름 속에서 집과 차는 점점 하나의 생활 동선으로 연결된다. 이동은 더 이상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 정의선이 말한 '이동 수단을 넘은 생활 플랫폼'


이러한 상상은 한국에서도 이미 공식 의제가 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CES 무대에서 자동차를 '이동 수단을 넘어 고객의 일상과 시간을 담는 생활형 모빌리티'로 확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그는 여러 연설과 메시지를 통해 모빌리티를 '삶의 질을 높이는 플랫폼'으로 규정하며, 자동차 안에서 일하고 쉬고 문화를 소비하는 경험을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강조해 왔다.

현대모비스가 공개한 '엠빅스(M.VICS, Mobility Vision Cockpit System) 5.0'은 이 비전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대표 사례다. 계기반 전체를 가로지르는 필러 투 필러(P2P) 디스플레이, 운전자와 동승자를 위한 대형 화면 구성, 상황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샤이 버튼' 인터페이스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스마트 룸'으로 재정의한다. 좌석은 회전·리클라이닝 모듈을 통해 회의실이나 라운지로 변하고, 실내 센서는 승객의 자세·피로·시선을 인식해 조명과 음향, 정보 밀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엠빅스 5.0[현대차 그룹 제공]

엠빅스 5.0
[현대차 그룹 제공]



정의선 회장이 강조해 온 "차량은 고객의 시간과 경험을 담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의 전제 역시 자율주행이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점점 기계로 이전될수록, 사람은 '달리는 행위' 대신 '머무는 경험'에 시간을 쓴다. 이때 승객이 그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쓰느냐가 곧 자동차의 경쟁력이 된다.


◇ CES 2026이 확인한 산업의 공통 전제

CES 2026의 자동차 전시는 이러한 변화가 더 이상 콘셉트가 아니라 업계의 공통 전제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기술과 제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에이전트형 AI, 그리고 인캐빈(in-cabin) 경험이다.

첫째, 차량은 더 이상 출고 시점에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다. SDV는 OTA를 통해 조향·제동·주차·에너지 관리·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구조다. CES 2026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AI 정의 차량' 개념이 등장했다. 차량이 단순 제어를 넘어 주행 패턴과 탑승자 선호, 주변 환경을 학습하며 스스로 '이 가족에게 맞는 이동 방식'을 제안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둘째, 에이전트형 AI가 본격적으로 차 안에 들어왔다. LG전자의 'AI 캐빈 플랫폼(Cabin Platform)'은 카메라와 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탑승자의 상태와 환경을 이해하고, 음성·제스처로 소통하며 경로·공조·조명·콘텐츠를 자율적으로 조율한다. 보쉬의 AI 플랫폼은 기존 차량에도 적용할 수 있어 차량을 이동 오피스, 이동 회의실로 확장한다. 자율주행이 활성화될수록, AI는 개인 비서이자 동반자, 동시에 안전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셋째, 인캐빈 경험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 몰입형 오디오, AR·VR 연동 환경 속에서 차 안은 회의실이자 교실, 거실이 된다. CES 2026의 한 가족용 EV 콘셉트는 '차 안에서 아이는 수업을 듣고, 부모는 원격 회의에 참여하며, 차량은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시연했다. 이동하는 두 번째 거실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이유다.

◇ 중공업에서 생활 플랫폼으로, 자율주행이 여는 구조적 전환

이 모든 변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철과 엔진 중심의 중공업 제품이었던 자동차가 소프트웨어·AI·공간 설계가 결합된 생활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환의 구조적 토대가 바로 자율주행이다.

과거 자동차의 가치는 얼마나 빠르고, 오래, 고장 없이 달리느냐에 있었다. 그러나 자율주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질문은 바뀐다.

"달리는 동안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동 시간이 '손이 묶인 시간'에서 '선택 가능한 시간'으로 전환되는 순간,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운송 산업에 머물 수 없다. 콘텐츠, 금융, 헬스케어, 교육, 주거와 연결된 복합 생활 인프라로 편입된다.

테슬라의 로보밴이 던지는 상상은 명확하다. 자동차는 도시 교통망 속 하나의 노드(Node, 데이터의 한 요소)이자 동시에 움직이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아침에는 통학 차량으로, 낮에는 물류 허브로, 밤에는 이동 쉼터나 숙소로 기능이 바뀐다. 내부 모듈만 교체하면 이동 병원, 이동 도서관, 이동 스튜디오로도 전환된다.

정의선이 말한 '모빌리티를 통한 삶의 질 향상'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현대차그룹이 UAM(도심항공교통), 로보틱스, PBV(목적기반모빌리티)를 동시에 추진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동 인프라 전체를 하나의 생활 플랫폼으로 묶으려는 시도다. 그 중심에서 자율주행은 안전을 위한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해방하고 그 시간을 담을 공간과 서비스를 설계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물론 이 비전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기술적 안전성, 법·규제, 책임 구조, 데이터 프라이버시, 노동 전환이라는 복잡한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자율주행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사고를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동 시간을 돌려주고, 그 시간 안에 어떤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누군가에게는 통근 시간이 공부와 휴식의 시간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봄과 치유의 공간이 된다. 어떤 도시에서는 자율주행 밴이 주거 비용을 보완하는 '움직이는 방'이 될 수도 있다.

중공업에서 출발한 자동차 산업은 이제 시간과 공간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자율주행은 그 변신의 기술 엔진이자 철학적 기준점이다. 더 안전하게 달리는 차를 넘어서,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

CES 2026 인캐빈 세션[홈페이지 캡처]

CES 2026 인캐빈 세션
[홈페이지 캡처]



테슬라의 로보밴, 정의선의 생활 플랫폼 선언, CES 2026의 인캐빈 혁신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안지다. 결국 자율주행 시대의 승자는 가장 빠른 차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이동하는 삶'을 가장 설득력 있게 디자인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자동차가 다시 묻고 있다.

앞으로 당신의 하루 중 몇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차 안에서 살고 싶은가.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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