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서부 농촌에서 하얀 지붕과 방충망이 설치된 주택. 저렴한 주택 개조 기술로 실내 온도도 낮추고 모기도 막는 효과를 거뒀다./해비타트 인터내셔널 |
저렴한 비용으로 치명적인 말라리아를 막을 방법이 있다. 바로 집을 바꾸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의학 연구자가 주택 리모델링을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추고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도 막는 일석이조(一石二鳥) 기술을 개발했다.
케냐 의학연구소의 곤충학자인 버나드 아봉고(Bernard Abong’o) 박사 연구진은 “농촌 지역에서 실내 온도를 낮추고 모기도 막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주택 개조 기술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지난 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했다. 아프리카 저소득층은 실내 온도를 높인다고 방충망 설치를 꺼리는데, 저렴한 냉방 기술로 그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덥다고 꺼리던 방충망, 실내 온도 낮춰 가능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4년 61만명이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아봉고 박사는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주택 개조에 눈을 돌렸다.
케냐 시골집은 과거 우리도 그랬듯 지붕을 함석판으로 만든다. 함석판은 얇은 강철판에 아연을 도금해 부식을 막은 소재로, 얇고 가공하기 쉬워 주택에 많이 쓴다. 하지만 열을 잘 흡수해 밤에도 실내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집 안이 더우면 말라리아를 부른다. 어쩔 수 없이 문과 창문을 열고 지낼 수밖에 없어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에 노출된다. 열린 문에 방충망을 달면 되지만 공기 흐름을 막아 실내가 더워진다고 꺼리는 사람이 많다.
개조 전 주택(a)과 매트를 붙인 천장(b), 지붕을 흰색으로 칠한 주택(c), 방충망 문(d), 방충망 처마(e), 방충망 창 내부(f)와 외부 전경(g)./네이처 메디슨 |
연구진은 케냐 서부의 한 마을에서 세 가지 냉방 전략을 시험했다. 10가구에는 환기 개선을 위해 창문을 더 달았다. 다른 10가구에는 지붕 열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천장에 식물 소재의 전통 매트를 설치했다. 나머지 10가구는 지붕에 열을 반사하는 흰색 페인트를 발랐다. 연구진은 집집마다 창문과 문, 처마에 방충망을 설치해 모기 유입을 차단했다.
실험 결과 지붕을 하얗게 칠한 전략이 실내 온도를 낮추는 데 가장 효과가 있었다. 실내 온도가 다른 집보다 낮에는 섭씨 3.3도, 밤에는 2.4도 낮았다. 동시에 방충망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암컷 아노펠레스 푸네스투스(Anopheles funestus) 개체 수를 77% 줄였다. 일본뇌염을 옮기는 집모기(Culex)는 58% 줄었다.
돈만 있으면 아프리카에도 에어컨이 달린 집을 지을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실험한 주택 개선 작업의 비용은 가구당 189달러(약 28만원)였다고 밝혔다. 아봉고 박사는 “아프리카 농촌에서 모기를 막는 방법은 모기장과 살충제밖에 없었다”며 “주택 개조는 실내 온도를 낮추고 모기 유입을 막는 데 효과적인 지속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실험에 참여한 가구 중 85%가 주택 개조에 돈을 들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영국의 비영리 연구 지원 재단인 웰컴 트러스트의 지원을 받아 주택 개조 실험을 300가구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 교수는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으로 세상에서 가장 흰 페인트를 개발했다. 이 페인트는 햇빛 98.1%를 반사해 정오에 주변보다 온도를 13.3도 낮췄다./미 퍼듀대 |
◇바르면 실내 온도 13도 낮추는 흰색 페인트
흰색 지붕의 냉방 효과는 예전부터 알려졌다. 더운 곳에서는 집을 흰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해 희게 보인다. 그만큼 열을 차단하는 데 좋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 박사는 온난화를 막으려면 세계 모든 지붕을 하얗게 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완벽한 흰색을 구현하는 페인트를 개발해 냉방 효과를 높이고 있다. 2021년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 교수 연구진은 흰색 페인트로 실내 온도를 크게 줄였다고 국제 학술지 ‘ACS 응용 재료와 계면’에 발표했다.
현재 시판 중인 흰색 페인트는 햇빛의 80~90% 정도만 반사한다. 퍼듀대 연구진은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을 써서 입자 크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햇빛의 98.1%를 반사하는 페인트를 개발했다. 야외 실험 결과, 새로운 흰색 페인트를 칠한 부분은 정오에 주변보다 온도가 섭씨 13.3도 낮았고, 밤에도 7.2도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
흰색 페인트의 냉방 효과는 빛 차단과 동시에 열을 내는 적외선을 방출한 덕분이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는 지구에 그대로 남아 도시 열섬 현상을 유발한다. 이에 비해 새 페인트는 대기에 흡수되지 않고 우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파장대의 적외선을 95% 이상 방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유안 양 교수는 2018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햇빛을 99.6%까지 반사하는 흰색 페인트를 발표했다. 건물에 바르자 햇빛의 거의 모든 파장을 반사해 표면 온도를 섭씨 6도까지 낮췄다.
연구진은 페인트 내부에 박혀 있는 공기 방울이 페인트를 더 하얗게 만든다고 밝혔다. 얼음은 빛이 그냥 지나가 투명하지만 빙수를 만들려고 갈면 공기가 들어가면서 빛을 반사해 하얗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냉방 페인트의 공기 방울은 가시광선은 물론 자외선과 적외선까지 반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5-04104-9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2021), DOI: https://doi.org/10.1021/acsami.1c02368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t9513
이영완 기자(yw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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