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시민권자라면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을까."
미국에 온 지 2년이 된 지금도 종종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024년 초 특파원으로 부임해 대선 캠페인을 취재하고, 2025년 트럼프 2기 집권 1년 차를 지켜보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역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하버드 때리기,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정적을 향한 사법 보복까지. 트럼프는 힘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앞세워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제도·법치 경시적 태도에 놀랄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답은 종종 불편한 지점에 닿는다. 만약 내가 미국 시민권자였다면, 트럼프에게 투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미국에 온 지 2년이 된 지금도 종종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024년 초 특파원으로 부임해 대선 캠페인을 취재하고, 2025년 트럼프 2기 집권 1년 차를 지켜보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역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하버드 때리기,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정적을 향한 사법 보복까지. 트럼프는 힘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앞세워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제도·법치 경시적 태도에 놀랄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답은 종종 불편한 지점에 닿는다. 만약 내가 미국 시민권자였다면, 트럼프에게 투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로이터연합뉴스 |
짧다면 짧은 2년이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미국의 현실은 이런 고민을 낳기에 충분했다. 뉴욕 맨해튼의 거리는 난민과 노숙자로 가득 차 있다. 뉴욕시는 법에 따라 모든 난민에게 무료 쉼터를 제공해야 하고, 그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은 고스란히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다른 사회적 의제 역시 논쟁적이다. 맨해튼 곳곳엔 남녀가 함께 쓰는 '올 젠더 화장실'이 흔하고, 여성 화장실만 이용하고 싶다는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벌써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은 다를 수 있다'는 교육을 받는 현실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모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집권 1년을 무조건 비이성의 결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불법 이민은 막고 합법적이면서도 필요한 인력 위주로 이민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 범죄 이력이 있는 이민자는 추방하겠다는 기조, 이른바 '워크(woke) 문화'에 반대하고 성전환 남성의 여성 스포츠 대회 출전을 제한하겠다는 정책. 트럼프가 줄곧 강조하고 실행해 온 이 메시지들은 상당수 유권자에겐 급진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에 가까울 수 있다.
경제·무역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연방정부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 효율화,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률 제고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겐 합리적인 처방으로 읽힌다. 제조업 붕괴로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진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은 관세와 대미 투자 확대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책을 반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견조하다. 지난해 3분기 미국 경제는 전기 대비 연율 4.3% 성장했다. 규제 완화와 인공지능(AI) 투자가 성장의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도 3% 미만으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서 급등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전망하며 트럼프에게 비판적이던 많은 경제학자에겐 달갑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물론 트럼프 시대에 민주주의, 동맹, 가치 외교를 축으로 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약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이나 제도 훼손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트럼프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에 시달려온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무제한 발행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천문학적인 정부 부채와 과도한 무역·안보 부담은 기축통화국 지위만으로 감당하기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쩌면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란 이름으로 표출된, 변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응축된 요구가 가장 거칠게 분출된 첫 신호탄일 수 있다. 수단과 방식은 과격했고 논란도 컸지만, 더 점잖은 얼굴을 한 제2·제3의 트럼프가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우리가 알던 '관대한'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에서 일탈적인 예외가 아닐 수 있다. 변화한 미국을 직시하고, 달라진 미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고민과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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