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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늦춘 삼성SDI의 달라진 결과

뉴스웨이 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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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기흥사업장 전경. 그래픽=홍연택 기자

삼성SDI 기흥사업장 전경. 그래픽=홍연택 기자


[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최근 국내 이차전지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속도 조절'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정책 불확실성이 동시에 겹치면서 주요 배터리 업체들이 계약 구조를 손보거나 투자 계획을 재조정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후발주자'로 평가받던 전략이 오히려 변동성 국면을 피해 간 선택으로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지역에서 계약 구조 조정과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가운데, 삼성SDI는 큰 변동 없이 기존 사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신중한 투자 기조, 이른바 '보수 경영'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SDI가 경쟁사 대비 계약 취소 충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배경으로는 북미 시장 진출 전략의 차이가 꼽힌다. 삼성SDI는 미국 내 단독 공장을 보유하지 않고,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JV)을 중심으로만 북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단독 공장은 고객 대응력과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삼성SDI는 수년째 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인터배터리 행사에서 최주선 사장이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로 인한 기회비용도 적지 않다. 북미 투자 시점이 늦어지면서 삼성SDI는 2023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각각 약 6000억원 규모로 수령한 미국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현재까지 AMPC 수령 규모는 LG에너지솔루션과 비교해 약 9배가량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다만 생산능력(CAPA)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 업황을 감안하면, 삼성SDI의 선택이 리스크를 최소화한 판단이라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기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경영을 이어온 곳으로 평가된다. 삼원계 배터리를 앞세워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 집중하다가, 올해 2분기에 들어서야 볼륨·엔트리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고객 수요와 기술 성숙도를 확인한 뒤 투자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외형 성장보다 수익성 방어에 무게를 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한동안 '후발주자'라는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이 같은 보수적 전략의 결과, 삼성SDI는 배터리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충분한 완충 장치를 갖춘 상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전기차 수요 둔화와 북미 투자 부담으로 수년째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SDI는 아직 별도의 비상경영에 돌입하지 않았다. 단기 외형 성장 속도는 더딜 수 있지만, 업황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을 사전에 확보해 둔 셈이다.

이러한 기조는 삼성그룹 전반에 공유된 경영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삼성은 대규모 투자에 앞서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 스타일을 유지해 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의 보수적 투자 기조는 개별 회사 판단이라기보다 그룹 차원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며 "공격적 외형 확장보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SDI의 전략을 단순히 '보수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오히려 선제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고체 배터리다. 삼성SDI는 2027년 하반기를 목표로 세계 최초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준비 중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혀 다른 제조 체계를 요구해 아직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 없다.


삼성SDI는 국내 투자 확대 차원에서 울산 사업장을 전고체 배터리 생산 거점으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양산 준비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전략을 조정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확보해 두는 편"이라며 "투자는 보수적이지만 차세대 기술만큼은 결코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고지혜 기자 kohj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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