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이 가시화하면서 기업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자율적으로 발간하던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제도권 공시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본질은 명확하다. 과거 ESG 공시가 활동을 알리는 홍보(PR)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기업이 위험을 얼마나 관리하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입증해야 하는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 공시는 더 이상 이미지 관리 수단이 아니다. 이제는 투자자 관계(IR)와 컴플라이언스의 문제다.
공시 책임의 무게중심도 이동 중이다. 최근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공시 책임자로 컴플라이언스 임원을 꼽은 비율은 41%로 전년 대비 24%포인트 급증했다. 공시가 단순한 데이터 관리를 넘어 법적 책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가 공시 항목과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그 결과 보고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법적 리스크의 출발점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그린워싱(위장 친환경주의) 점검을 강화하며 시정 조치를 늘리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공시 내용이 소송과 제재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탄소 중립 선언 이후 감축 경로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 법적 제재를 받은 토탈에너지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허위·과장 공시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공시는 단순한 정보 공개가 아니다. 한 번 공개한 내용은 이후 기업 스스로 구속하는 기준이 된다. 특정 주제가 자율 공시라고 하더라도 그 책임까지 자율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공시 언어 역시 달라져야 한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표현에서 벗어나 검증 가능한 비즈니스 언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에게 공시는 투자를 결정하는 판단 근거다. 현실성 없는 선언은 평판을 훼손하고 여신 한도 축소나 금리 인상 등 재무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신뢰도 높은 공시는 투자자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고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의 기반이 된다.
공시를 둘러싼 압박은 규제 당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투자자와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보고서 문구를 검증·지적하는 ‘연성 규제’도 커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컴플라이언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단순히 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선언이 실제로 이행 가능한지, 외부 검증에 대응할 근거가 충분한지를 사전에 살펴야 한다. 데이터 정확성을 담보하는 보고 조직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컴플라이언스 조직의 두 축이 모두 필요하다.
결국 기업은 기존 공시 방식에 컴플라이언스를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컴플라이언스·재무·ESG가 연계된 거버넌스, 데이터 관리·추적 시스템, 공시 내용에 대한 컴플라이언스 검토 체계, 그리고 사후 대응 역량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전문가의 법률 검토와 제3자의 독립적인 외부 인증은 공시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안전장치다.
많은 기업이 공시 시점까지를 목표로 삼지만 진정한 리스크는 공시 이후에 시작된다. 공시 정보는 공식 기록으로 남아 이후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재무 보고가 경영자의 주장이라면 ESG 공시 역시 기업의 주장이다.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이제는 작성이 아니라 증명이다. 우리의 공시는 책임질 수 있는 공시인가. 이제 증명으로 답해야 할 때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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