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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의 窓] ‘노래하는 철학자’ 조용필

조선일보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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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기자 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올림픽체조경기장) 단독 공연 중 조용필이 노래 ‘미지의 세계’ 순서에서 기타를 메고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오른쪽)과 듀엣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윤수정 기자 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올림픽체조경기장) 단독 공연 중 조용필이 노래 ‘미지의 세계’ 순서에서 기타를 메고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오른쪽)과 듀엣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조용필 노래 ‘친구여’의 가사가 그렇게 슬프다는 것을 그날 처음 깨달았다. 배우 안성기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9일, 서울 케이스포돔에서 콘서트를 연 ‘안성기의 친구’ 조용필이 이 노래를 부를 때 기자도 객석에 있었다.

그날 깨달은 것이 또 있었다. ‘친구여’를 비롯한 수많은 조용필 노래는 결국 우리가 인생의 기나긴 길에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여러 국면을 담고 있다는 것. 그걸 누구보다도 설득력 있게 노래하는 사람이 조용필이라는 것. 그리고 그의 노래가 유난히 ‘질문’과 ‘대답’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이라 노래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라며 질문의 무용(無用)함을 탄식하는 듯하더니, ‘바람의 노래’에서는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며 인생의 깨달음을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철학의 시작은 ‘질문’이며 그다음 단계가 ‘대답’이다. 인간과 세계, 삶의 본질에 의문을 지니고 묻지 않는다면 사람의 사고(思考)는 발전할 수 없고, 각성의 순간도 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용필의 노래 전체는 거대한 철학의 시편이고, 각 노래는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펼쳐지는 질문과 대답의 장(章)이 아니었을까.

기자가 청소년이던 1980년대, 조용필은 이미 ‘가왕’이라 불렸지만 신곡 반응이 꼭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 어르신은 ‘고추잠자리’를 듣고는 “저렇게 가성을 지르는 노래가 노래냐”며 분노했고, ‘단발머리’의 전자 음향이 유치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들어보니 ‘고추잠자리’는 질풍노도의 성장기에 대한 정치(精緻)한 묘사였고, ‘단발머리’의 전자음은 흘러가 버린 청춘에 대한 축포와도 같은 찬사로 들렸다.

조용필은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음악 철학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거 없고, 내 길을 그냥 꾸준히 갈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2시간 15분의 공연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쉬지 않았다. 20여 년 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용필을 노래방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조용필은 “나는 ‘성대를 아끼기 위해 매일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는 가수를 보면 한 대 패 주고 싶다”며 기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길을 걸었다’는 일견 소박해 보이는 가치관이 그의 철학이었고, 그것이 그가 부르는 모든 노래들이 그의 삶과 일치돼 감동을 주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이제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조용필은 철학자였다’고.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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