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정옥희의 몸짓 탐구생활] [12] 앞자리 관객의 뒷모습 관람기

조선일보 정옥희 무용평론가
원문보기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공연장은 천편일률적인 듯 보여도 조금씩 다르다. 무대의 깊이와 높이, 객석의 단차와 배치, 의자의 높이와 쿠션감. 이 모든 것이 작품과 나를 매개하며 관람 경험을 만든다. 시설보다 중요한 건 내 주변의 관객이다. 옆자리 관객은 지인으로 채울 수 있지만 앞자리 관객은 운명이다.

그날은 운이 나빴다. 앞자리 관객에 시야가 가렸다. 덩치가 큰 것도 아닌데 왜 안 보이지? 자세히 보니 자세가 꼿꼿한 데다 거북목이다. 등을 좌석에 밀착했음에도 머리가 10㎝ 정도 앞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현대인의 기본값을 어쩌나. 나는 좌우로 시야를 확보해 보려다가 포기했다. 무용수가 이동할 때마다 오뚜기처럼 머리를 흔들다 보면 나의 뒷사람도 반대 방향으로 오뚜기 관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시대다. 관크라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패딩을 부스럭거려도, 고개를 까딱거려도 안 된다. 우리는 두 눈만 남긴 채 몸을 지울 것을 명령받는다. 하지만 펄떡이는 몸이 어디 가겠는가. 아무리 꼼짝하지 않으려 해도 몸의 덩어리와 습관은 지워지지 않는다. 관객이란 예측할 수 없는 라이브 공연의 경험을 나누고자 모인 일시적 공동체이고, 이 예측할 수 없음엔 나의 몸과 타인의 몸도 포함된다.

작품 중반쯤 되자 앞사람의 몸이 앞으로 기울며 내 시야는 무대의 가운데 토막이 날아갔다. 고전적인 무대 연출론에 따르면 무대 중앙은 강렬한 위치라 중요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 나는 중요한 장면 대부분을 놓친 셈이었다.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방황하던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그만두었다. 이 관객의 뒷모습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고, 그 기운이 뒷모습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뒷모습만 담은 사진 에세이를 쓴 미셸 투르니에가 말하길 ‘앞모습은 거짓말해도 뒷모습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무방비 상태로 열중한 그의 뒷모습은 왠지 찡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났다. 커튼콜이 시작되며 첫 출연자가 나오자 그는 열렬히 손뼉 쳤다. ‘역시 출연자의 아버지군.’ 그런데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박수의 강도가 줄지 않았다. 모든 출연자가 손잡고 인사하자 그는 머리 위로 손뼉을 쳤다. ‘안무가의 아버지일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애정 가득한 박수는 따뜻했다. 나의 관람은 무대 위보다도 아래의 인상으로 가득하지만 그 역시 라이브 공연의 묘미일 테다.

[정옥희 무용평론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내란 음모 사건
    내란 음모 사건
  2. 2전광훈 구속 서부지법
    전광훈 구속 서부지법
  3. 3U-23 아시안컵 8강
    U-23 아시안컵 8강
  4. 4이병헌 이민정 딸
    이병헌 이민정 딸
  5. 5임시완 과부하
    임시완 과부하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
[정옥희의 몸짓 탐구생활] [12] 앞자리 관객의 뒷모습 관람기 : zu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