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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덕의 공유주방] [2] 요리는 고통인가, 궁리인가

조선일보 유재덕 파불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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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방에서 30년을 보내는 동안 틈틈이 책을 읽었다. 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라는 것을 중년에 들어설 무렵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령을 터득하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초보 요리사 시절의 나는 ‘고통 중독자’였다. 조리학이 아니라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호텔에 일반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업무상 호텔 주방을 들락거리다 요리사의 세계에 매료됐고, 천신만고 끝에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멋진 요리사가 되려면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할 테고,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결심은 굳건했지만 수면 부족은 정말 힘들었다. 때론 고참의 스케줄 땜빵 때문에 야근한 바로 다음 날 새벽 스케줄이 잡히기도 했는데, 어느 날엔 잠이 들면 깨지 못할 것 같아서 아예 자지 않고 이틀을 버티기도 했다. 젊어서 가능했지만, 젊다고 고통까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짧은 식사 시간도 큰 고통이었다. 주방 입문이 늦었던 탓에 손이 느린 요리사였던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일했다. 식사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밥을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셨다. 한 끼를 해결하는 데 10초나 걸렸을까?

그렇게 주방에서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고통에 중독돼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없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뭔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랄까. 그러고 보니 아주 사소한 것들을 선택할 때도 고민을 했다. 물론 고통스러울 만큼 깊은 생각이 필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초코케이크와 딸기케이크를 앞에 두고 고민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건 즐거운 궁리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평생 풀기 힘든 문제였고 그래서 고민이었던 요리를, 이젠 좀 즐겁게 ‘궁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요리는 적절함이 생명이다. 어떤 경우에도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고민이 아닌, 즐거운 궁리 후에 나오는 나의 요리들은 어떨지, 나도 사뭇 궁금하다.

[유재덕 파불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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