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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규인]남들 실패 확률 논하는 아주 성공한 체육인들

동아일보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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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자칭’ 증권 전문가가 32명에게 메일을 보낸다. 16명에게는 “이 주식이 100% 오를 것”이라고 쓰고 16명에게는 “100% 내릴 것”이라고 쓴다. 실제로 주식이 올랐다면 ‘오른다’고 메일을 보냈던 16명을 다시 반으로 나눠 똑같이 작업한다. 이 과정을 네 번만 반복하면 그는 최후의 1인에게 ‘족집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 선수 최저학력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체육계 목소리에도 이 ‘최후의 1인’ 논리가 담겨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와 지도자위원회는 8일 “최저학력제는 ‘운동선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작으므로 대비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됐다”면서 “이 논리는 수많은 선수를 이미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 즉 잠재적 낙오자로 규정하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단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는 것부터 ‘아주 성공한’ 선수·지도자라는 뜻이다. 김국영 선수위원장은 한국 육상 남자 100m 기록(10초07) 보유자고, 송대남 지도자위원장은 2012 런던 올림픽 유도 남자 90kg급 금메달리스트다. 이들은 선수 은퇴 후에도 체육계에 남아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육상 대표팀 코치, 송 위원장은 실업팀 감독이다.

‘보통들’의 현실은 다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해 펴낸 ‘2024년 체육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퇴 선수 6만4380명 가운데 23.3%만 체육계에 남았다. 이보다 10%포인트 많은 33.3%는 이해 연봉으로 ‘없음’을 선택했다. 또 가장 많은 72.3%가 ‘재취업 및 직업교육 지원’을 가장 필요한 복지 정책으로 꼽았다.

이 조사는 은퇴 후 초중고 체육 선생님이 된 경우도 체육계 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분류했다. 김준호 칠성중 교사도 같은 길을 걷게 된 은퇴 선수 2.7% 중 한 명이다. 김 교사는 2016년 8월 24일 프로야구 마산 경기 시구자로 나섰다. 시구 행사가 끝나자 TV 중계를 맡았던 허구연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학창 시절에 야구 한 거 아닌가요? 폼이 거의 완벽한데요”라고 평했다. 김 교사는 1군 무대 통산 59경기 출전 기록을 남긴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지만 고려대 선배인 허 총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 신청자 숫자를 기준으로 하면 1군 경기 출전 기록을 남기는 것도 상위 5% 안에 드는 ‘성공 사례’다. 이 정도 성공도 금방 잊히고 마는 게 스포츠 세계 생리다. 어떤 스포츠든 성공을 거둔다는 건 다른 누군가를 패배자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성공이 코앞이던 선수도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주식 오른다는 말을 괜히 믿었다’며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선수·지도자위원회는 “학습권 보장 정책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이프가딩(safeguarding)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했다. 아니다. 이 원칙에는 ‘선수의 교육적 요구를 무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보통의 존재’를 보호하려는 이 원칙을 가장 불편해하는 존재가 ‘이들이 실패한 덕에 성공한 체육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처음부터 설명이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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