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그런 위치를 차지해 왔다. 미군의 보호를 받아 온 적지 않은 나라들로서는 이를 문제 삼을 이유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예측하기 어려운 성향을 지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처음 선출된 이후, 이 같은 무사안일주의는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 역사학자 에마 쇼티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미국 후(After America)’를 통해 호주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는 시대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1951년 태평양안보조약(ANZUS) 체결 이후 호주 지도자들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 왔고, 어떤 상황에서도 미국의 편에 설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기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호주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목적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였다. 호주는 참전의 대가로 세계 최강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누렸다. 호주 시민에게만 허용되는 E-3 미국 취업비자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세계 최강국과의 밀착이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온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합병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침공할 경우 호주는 이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쇼티스가 묘사한 호주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든 상상이든 위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보호자로 여겨 온 미국을 따라온 호주는 트럼프의 변덕을 외면할 여유를 이미 잃었다. 미국이 공동의 가치나 국제법을 위반한다면 호주 역시 그 행위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쇼티스는 미국이 애초부터 공동의 가치나 국제법을 일관되게 존중해 온 것은 아니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약속해 온 안보조차 여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미국과의 관계를 놓고 보면, 호주와 한국이 처한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쇼티스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유세계의 지도자이자 가장 강력한 동맹국, 보호자로 여겨졌던 미국은 실제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김광기 경북대 교수는 2011년 펴낸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통해 미국의 성공 요인을 잠식해 온 국내 문제들을 진단했다. 책을 살펴보면 한국 역시 내부적으로 오래전부터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돼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건국 이래 미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온 한국에서 호주보다 먼저 ‘탈(脫)미국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쇼티스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탈미국 세계’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재조정을 호주의 대비책으로 꼽았다. 맹목적인 충성으로 움직이는 속국이 아니라, 미국이 보여 주는 최악의 본능에는 반발하면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호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 역시 그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농담조로 ‘51번째 주’라고 불렀던 캐나다는 지난해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에 맞서 보복 관세와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대응했다.
호주와 캐나다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문화적 공통분모를 어느 정도 지닌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인 한국은 미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더라도 같은 문명권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거리감은 한국이 미국의 행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많은 한국인들의 인식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에서는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노선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훗날 ‘탈미국 한국’의 시작점으로 재평가될지도 모른다.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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