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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776m '일본의 상징'… 그 산의 힘을 믿는 민간신앙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파이낸셜뉴스 정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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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후지산과 슈겐도(修驗道)

어느쪽에서 봐도 같은 모양이자
언제든 분화할 수 있는 활화산
구름과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
해돋이 보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
산에서 마주친 흰옷 입은 사람은
신불습합의 재가주의 실천하며
영봉의 기운을 따르는 수행자들


지난 2004년 8월 '슈겐도' 신도들이 화산재로 형성된 후지산의 토양을 밟으며 하산하고 있다                                  항공기에서 바라본 눈 덮인 후지산. 사진=AP뉴시스

지난 2004년 8월 '슈겐도' 신도들이 화산재로 형성된 후지산의 토양을 밟으며 하산하고 있다 항공기에서 바라본 눈 덮인 후지산. 사진=AP뉴시스


하네다 공항발 김포행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왼편 아래로 보이는 설산이 후지산(富士山)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동형인 삼각형이 그야말로 산(山)자의 모델이며, 일본 상징의 으뜸으로 불린다. 기슭에는 수목이 울창하지만, 고도가 높아갈수록 나무는 사라지고 지면은 흑색의 화산암 자갈들이 주류다. 1727년부터 측량됐던 산의 높이에 대한 기록은 해발 3226m부터 4322m까지 다양했다. 1887년 참모본부가 3778m로 측정한 후 재차 수정되어 현재 3776m로 확정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활화산의 특성으로 인해 이 높이는 사실상 지속적으로 변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대만에 있다. 옥산(玉山)이 3952m, 설산(雪山)이 3886m다. 일치기(日治期) 동안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옥산의 이름은 신고산(新高山), 설산은 차고산(次高山)으로 바뀌어 있다. 후지산이 최고봉이었는데, 청일전쟁의 승전 대가로 대만이 일본 영토에 포함되면서 후지산보다 더 높은 산이 일본 영토 내에 둘 더 생겼기 때문에, 후지산을 기준으로 개명한 결과였다.

■'후지' 이름은 아이누어에서 유래

일본 중심의 개명은 식민지 어느 곳에서든 사람과 땅을 대상으로 예외 없이 자행됐다. 그것이 식민지적 지배정책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후지산은 그만큼 일본인들의 사상적·정신적 중심에 자리하는 측면도 있다. 일본 지도에는 '후지(富士)'라는 단어가 들어간 지명이 적지 않다. 후지산을 기준으로 여러 가지 관련성을 기초로 하거나, 멀리서 후지산이 보인다는 경관을 기준으로 한 것들도 있다. 모양새가 후지산처럼 생긴 산도 적지 않다. 가고시마의 이부스키반도 끝자락 지란이란 곳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대동아전쟁 말기 특공대 주둔의 최대 기지였다. 그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표고 924m의 화산인 카이몬타케(開聞岳)는 후지산의 축소판이다. 폭탄과 편도 연료만 탑재한 '카미카제(神風)' 특공기가 출격하면, 곧바로 카이몬타케를 한 바퀴 선회하는 편대비행이 작전의 시작이었다. '신국일본(神國日本)'의 결전생활을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멀리서 후지산이 보이는 거리는 340㎞라는 기록도 있다. 도쿄와 요코하마의 아파트 가격도 후지산 전망에 따라 편차가 생긴다. 1707년에 마지막으로 폭발했던 후지산이 "지금 당장 분화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는 과학적 진단서는 형언 불가능한 재앙의 청구서나 마찬가지다. 그 영향은 한반도에도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후지산 폭발 가능성에 관한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다카무라씨는 "카미사마(神樣), 호토케사마(佛樣)"라고 중얼거리며 비손공양을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예외 없는 심정일 게다.

후지산의 어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19세기 말 일본에 도착했던 영국 선교사 배철러의 설을 신뢰한다. 그의 아이누어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불을 뿜어내는 산'을 의미하는 아이누어인 '훈치누뿌리(フンチヌプリ)'에서 유래한다. '훈치'가 후일 일본어 '후지'로 음차됐다는 주장이다. 일본열도의 고지명이 아이누어에 기원하는 사례가 기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철러의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소싯적부터 산을 좋아해 서울대 산악반의 OB까지 활동하셨던 한상복 선생을 후지산 등반여행에 모신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도쿄대의 초빙으로 외국인 연구원 및 비상근 강사를 하고 있었고, 그 기회를 이용해 2004년 8월 야간 등산코스에 등록했다. 목표는 익일 새벽의 '고라이코(御來光)', 즉 해돋이를 보는 것이고, 구름과 안개로 인해서 여간 운이 좋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절경이라고 했다. 중턱까지 버스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후지산신사도 있었다. 도시락 점심 후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해발 2500m 정도부터는 수목이 없었고, 적흑색으로 부서진 화산암들이 산자락에 깔렸다. 발아래에 펼쳐진 산록의 수림과 멀리 보이는 해안선과 도시의 모습들이 장관을 이뤘다. 정상에서부터 하산하는 사람들 중에는 흰색의 유니폼(시로쇼조쿠·白裝束)과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수행차 등산하는 '슈겐도(修驗道)'의 집단들이었다. 군대 내무반과도 같은 천장이 낮은 '야마고야'(山小屋·등산객 피난용 숙소)에 배정받은 방에서 집단 수면시간이 있었고, 침낭이 제공되었다. 새벽 2시 기상해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천이었다. 동트기 직전 정상에 도달했고, 떠오르는 해를 기다렸다. 일장기 같은 형상의 태양이 솟아오르자, 바라보던 등산객들이 모두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환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태양을 향한 마음이 산악신앙과 일체화되었을까.

후지산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산악신앙은 슈겐도로 집약된다. 슈겐도는 고대 일본의 산악신앙에 불교와 도교의 요소가 혼합돼 성립된 민간신앙의 하나다. 산과 관련된 신앙이라는 점에서는 한국 고래의 산신과도 문화적으로 연동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슈겐도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의 형태로서 재가주의를 관철하는 신앙이다. 신도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범위 내에는 반드시 수험을 실천할 명산과 영봉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며, 지역주의가 강하게 표현된다. 후지산이 위치한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에는 후지산만을 대상으로 삼는 슈겐도 집단들도 있다. 슈겐도에 관한 종교학적 연구의 박사학위 논문도 부지기수다. 1922년 프랑스에 유학해 마르셀 모스로부터 훈도를 받았던 우노 엔쿠 교수의 도쿄대 종교학과 학위논문이 슈겐도에 관한 연구다. 그는 6·25 때 납북된 종교민족학자이자 당시 국립민족박물관장 김효경의 은사이기도 했다.


■후지산 주변에는 자위대 군사시설도

후지산 주변에는 자위대 훈련장과 군사시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러한 실물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동아전쟁 말기 후지산에 지하 군사시설을 건설했다는 요새전설이 있다. 본토 결전에 대비한 전쟁지휘부와 황실피난소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실물 정보는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요괴에 정을 붙인 일본인들이 후지산 신성화에 괴담을 동원한 결과일까. 앞으로 언젠가 후지산 분화가 일어난 후 미래의 고고학자가 용암하의 지하동굴 요새를 발굴하는 날이 올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심취했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던 세계 고고학사의 관심이 후지산에서 되풀이될까.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으로 국립청주박물관과 야마나시현립박물관 간 학술교류 명목의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가 구설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후지산의 신성'과 '무사정신'의 이면에 은폐된 역사로 인한 균형감각의 상실을 지적하고 싶다. 일본 측의 후지산을 내세운 스텔스 마케팅 전략을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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