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1970년대 이란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보면 여성들이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자유롭게 여가와 유흥을 즐기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당시 서구 여성과 분간이 안 된다. 심야에 남녀가 어울려 클럽에서 춤추고 여성들이 반바지를 입고 축구 경기를 했다. 세련된 차림의 남성들 표정에도 활기가 넘쳤다. 친미 정권이던 팔레비 왕조 시절이다. '오일 머니'와 산업화 정책 덕에 경제는 급성장했고 서구화를 추구한 사회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당시 중동에서 이란은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첨단 무기를 지원받아 역내 패권국이 됐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 체제'가 들어선 이후 숙적 십자군 무리에 대항해 반서구·반미·반이스라엘 기치를 든 이란의 경제는 위축됐고 사회 분위기도 급격히 경직됐다. 왕정 독재 타도를 외쳤던 이란 혁명 세력은 과거로 더 퇴보한 정치 체제인 신정 독재를 불러왔다. 남자들의 넥타이는 '제국주의 상징'으로 지목돼 클럽, 음주, 영화관 등과 함께 사라졌다. 특히 여권은 처참히 퇴보했다. 알록달록 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거닐던 여성들은 검은 히잡과 차도르로 몸을 꽁꽁 싸맸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됐고 조혼 금지 규정도 느슨해졌다.
중동의 친미 경찰에서 시아파 맹주로 돌변한 이란은 시아파 테러리스트들을 결집하는 '저항의 축'을 자임하며 미국과 대치했다. 특히 이라크와 8년 전쟁에 이어 핵 개발을 막으려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지속되자 국민 소득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친중 기조를 더하고 핵 개발에 몰두한 최근엔 미국의 제재 강화에 군사 공격까지 겹치면서 리얄화 가치가 폭락하고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며 민생이 파탄 났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 체제'가 들어선 이후 숙적 십자군 무리에 대항해 반서구·반미·반이스라엘 기치를 든 이란의 경제는 위축됐고 사회 분위기도 급격히 경직됐다. 왕정 독재 타도를 외쳤던 이란 혁명 세력은 과거로 더 퇴보한 정치 체제인 신정 독재를 불러왔다. 남자들의 넥타이는 '제국주의 상징'으로 지목돼 클럽, 음주, 영화관 등과 함께 사라졌다. 특히 여권은 처참히 퇴보했다. 알록달록 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거닐던 여성들은 검은 히잡과 차도르로 몸을 꽁꽁 싸맸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됐고 조혼 금지 규정도 느슨해졌다.
이란 시위 진압 희생자로 추정되는 시신들 |
중동의 친미 경찰에서 시아파 맹주로 돌변한 이란은 시아파 테러리스트들을 결집하는 '저항의 축'을 자임하며 미국과 대치했다. 특히 이라크와 8년 전쟁에 이어 핵 개발을 막으려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지속되자 국민 소득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친중 기조를 더하고 핵 개발에 몰두한 최근엔 미국의 제재 강화에 군사 공격까지 겹치면서 리얄화 가치가 폭락하고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며 민생이 파탄 났다.
결국 참다못한 민중이 봉기했다. 지난 달 말 테헤란에서 민생고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는 '독재 타도'를 외치는 체제 전복 기도로 격화하며 이란 전역으로 확산한 상태다. 정부가 통신망을 차단해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지만, 인권 단체와 외신에 따르면 실탄을 사용한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 최소 500여명, 부상자 최소 수천 명, 구금자 최소 1만여 명이 넘는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정부군의 일방 학살이란 비난까지 나오자 국제사회는 유혈 진압 중단과 통신망 복구를 촉구했고, 특히 미국은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태다.
이처럼 안팎으로 물리적 긴장이 조성된 이란의 상황은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며 협력해온 베네수엘라의 최근 모습과 겹친다. 베네수엘라는 마약 범단 수괴로 지목된 국가 원수가 미국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군사 작전에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붙잡혀갔다. 형제국이자 준동맹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실제로도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역내에서 반미 연대의 축을 자임한 국가인 동시에 친중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즉 각각 중동과 남미에서 '친중반미'의 구심점이다.
무엇보다도 두 나라 모두 거대 산유국이자 친미 국가로서 역내 경제 선도국 역할을 했고, '혁명'에 의해 반미 정권이 들어섰으며, 그 이후 점진적으로 퇴보해 민중의 삶이 피폐해진 점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두 나라는 각각 '신'과 '민중'의 이름으로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 결과는 경제적 풍요와 다양성의 상실로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역시 1999년 우고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 이전엔 수도 카라카스가 '남미의 파리'로 불릴 만큼 풍요와 세련미로 상징되던 부국이었다.
혁명 전 베네수엘라 주요 도시는 미국 남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고 한다. 미국산 고급차들이 도로를 메웠고 도심엔 고층빌딩이 앞다퉈 들어서 미국 음식점 체인과 영화관, 클럽이 입주했다. 여성들은 최신 유행 드레스를, 남자들은 고급 위스키를 즐겼다. 사회 분위기 역시 개방적이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모두 빈부 격차는 당연히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다수 국민이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극빈층 화하는 현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 세계 최대란 축복에도 26년 사회주의 독재 속에 가난과 범죄의 상징으로 추락했다. 지상 최고 복지국가란 표어를 내세워 포퓰리즘 정책을 펼수록 경제는 망가졌다. 국민 4명 중 3명 넘는 비율로 극빈층이 됐고, 물가 상승률 1만%를 넘는 해도 있었다. 화폐는 휴지가 됐고 생필품도 품귀됐다. 닭 한 마리를 사려고 큰 포댓자루에 지폐를 담아갔다. 상점 진열대는 텅 비었고 시민들은 빵 한 덩이를 사려고 장시간 줄을 섰다. 정부가 범죄집단과 마약 사업을 벌이니 살인과 강도 범죄율은 치솟았고 생계형 성매매가 일상이 됐다. 이런 생지옥 같은 고국을 버린 난민이 800만 명에 육박했다.
미국으로 압송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
이 같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독재 체제가 연명할 수 있도록 호흡기 역할을 해온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과 맞설 해외 네트워크 구축의 핵심 거점으로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활용했고, 두 나라는 중국을 안정적인 원유 판매처로 삼았다. 또 서로를 주요 무역 동반자이자 미국 견제를 위한 군사 협력 관계로 여겼다. 중국의 도전 저지를 지상 목표로 설정한 미국은 이런 움직임을 방치해선 안 될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제정세를 정확히 인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은 대륙별 친중 네트워크를 분쇄하는 작업을 대놓고 가시화했다. 베네수엘라가 시작이라면 다음 표적은 이란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다음은 서반구의 쿠바와 콜롬비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등이 차례로 거론된다.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경우 미국이 중국으로 기우는 나라를 견제하고자 직접 눈에 띄게 움직이는 모습은 피할 것이란 견해가 많다. 다만 무역 관세와 환율 등 경제적 압박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고 또는 보복할 가능성은 있다. 최근 민중 봉기로 친중 정권이 붕괴한 네팔 역시 남아시아 친중 네트워크 거점인데, 일각에선 대규모 시위 배후에 미 정보당국이 있다는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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