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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23] 제사와 헌사의 차이

조선일보 문지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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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 책을 내면서 제사를 찾느라 한참 고심했다. 제사(題詞)란 책의 첫머리에 책 내용과 연관 있는 경구나 시 등을 적은 짧은 글인데, 대개 한 문장이거나 길어도 한 단락을 넘지 않는다. 주로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된 고전 속 명언, 성경 구절, 셰익스피어가 단골손님이다. 예컨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제사는 로마서 12장 19절이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 삐딱한 작가들은 없으면 지어서 쓰기도 한다.

반면 헌사(獻詞)라는 것도 있다. 역시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글로, 보통 ‘—에게’라고 쓴다. 책을 쓴 사람이 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바친다는 의미다. 존경, 감사, 사랑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나 간혹 저주나 복수일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헌사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 앞에 적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다. ‘다시 한번 젤다에게(Once again to Zelda)’. 생각해보면 제사는 누군가의 말을 기억하며 쓴다는 뜻이고, 헌사는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뜻일 테다.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며 살거나, 누군가를 위해 살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비록 작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점에서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제사와 헌사가 필요하다. 때로는 단 하나의 문장이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1년을 견디게도 살게도 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라는 책의 작가니까.

그래서 내 책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제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가져왔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시간이 마침내 당신을 찾아냈도다.” 헌사는 이렇게 썼다. “JH에게.” 출간 후 편집자들에게 헌사 속 JH가 혹시 ‘지혁’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아니다. 나와 똑같은 이니셜을 가진 아내의 이름이다.

[문지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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