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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갚고 20년 뒤 오라”며 세상 떠난 딸…“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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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단역배우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 장연록(73)씨는 국회청원 동의 요청 손팻말을 들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갈무리

지난 7일 ‘단역배우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 장연록(73)씨는 국회청원 동의 요청 손팻말을 들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갈무리


“이렇게 빠른 시간에 5만명이 동의할 거라고 기대도 못 했어요. 딸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단역배우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 장연록(73)씨는 12일 한겨레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국회전자청원에 공개된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청문회 및 특검 요청에 관한 청원’은 2주 만인 이달 8일 5만3천여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전날 청원 큐알(QR)코드(정보무늬)가 그려진 팻말을 들고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던 장씨는 연신 “감사하다”며 큰절을 올렸다. 12일 현재 청원 동의는 5만4천명을 넘었다.



사연은 22년 전에 시작됐다. 장씨의 첫째 딸 ㄱ씨는 2004년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다 관계자 12명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 및 강제추행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1년7개월 만에 고소를 취하하게 됐다. 경찰이 ㄱ씨에게 ‘가해자의 성기를 그려보라’고 요구하는 등 수사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이어졌다고 한다. 검찰로 사건이 이송되고도 가해자들의 압박이 계속돼 ㄱ씨가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장씨의 주장이다. 결국 가해자들에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ㄱ씨는 2009년 “날 단단히 갖고 놀았다. 더 이상 살아 뭐 하겠니”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ㄱ씨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동생도 같은 해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목숨을 끊었고, ㄱ씨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세상을 등졌다.



가족을 잃은 장씨는 국회 등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장씨는 “이 사건으로 한 가정이 완전히 무너졌다”며 “작은딸이 유서에 ‘엄마는 강하니까 원수 갚고 20년 후에 따라오라’고 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딸들의 억울함을 풀려했지만, 장씨는 ‘명예훼손 가해자’로 내몰렸다. 장씨는 2014년 가해자 12명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냈지만 민법이 규정한 관련 소멸시효 3년이 지나 패소했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장씨를 고소했다. 2017년 법원은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피고인 및 두 딸의 극심한 괴로움을 보면서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가 가해자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1인 시위 등을 계속하자 소송은 이어졌다. 그는 “10여년 동안 30여건 재판에서 손해배상금으로 낸 돈만 수억원에 달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고 답답해했다.



이번 청원에는 ‘공권력에 의한 고소 취하와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경위, 자살에 대한 배경을 밝혀주길 바란다’며 국회 청문회와 특검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 사건이 알려져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으나 사건기록의 폐기, 2차 가해자로 지목된 경찰의 퇴직 등으로 별다른 결론을 얻지 못하고 종결했다. 장씨는 “이번 정부는 꼭 힘없는 약자 편에 서줬으면 한다”며 “제발 나를 국회에 불러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수사기관과 법원은 과거 공권력이 실패한 부분을 반성하는 시각에서 이 사건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도 “방송 현장의 구조적 문제”라며 “이 사건 뒤에도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성폭력 발생 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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