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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큰맘 먹고 책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아이의 책모임이다. 어쩌다 동네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러한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혹시 아이와 상의해보고 원하는 아이가 있으면 같이 해보자고 했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될 때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이웃에게 밝힌 적이 없었는데 혹시 관련된 일을 하냐는 한 엄마의 물음에 초등교사이면서 동화작가라는 얘기를 한꺼번에 털어놓고 말았다. 모임은 순조롭게 구성됐다. 아이들과 사전 모임을 하고 책모임 이름을 정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따서 ‘푹신한 책모임’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이들이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한권씩 추천하고, 순서를 정하고, 질문을 만드는 방법을 실습을 한 다음 2주에 한번 일요일에 두시간씩 모임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여섯명이 한권씩 추천해서 석달간 여섯권의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고, 책모임 발제를 준비하며 작가로서도 선생님으로서도 공부가 많이 됐다. 아이들이 추천하는 책들 중에는 가벼운 일상물도 있었지만 신화와 설화의 화소가 촘촘히 들어 있는 책도 있었다. 신화와 설화의 화소가 촘촘히 들어 있는 책을 다룰 땐 그 설화의 내용을 정리해서 아이들과 같이 보충학습을 했다. 아이들이 복잡하고 심각한 설화를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수확이었다. 제일 난감했던 책은 현실 문제를 다룬 책이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아빠가 야근하다가 집에 못 온 날 아빠가 없어진 줄 알고 회사로 아빠를 찾아 나서는 아이들이 나오는 책을 읽을 때는 ‘주식’을 설명하는 것이 난이도가 높았다.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건을 소재로 다룬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주인공이 경비원인 할아버지 밑에서 크는 아이인데 조손가정을 실제로 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설명이 필요했다. 부유한 동네에서 경비원이 흔히 ‘갑질’이라고 하는 일을 겪는 상황도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동안 좋은 어른들만 보고 자란 건 다행일 텐데, 아이들이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일은 정말로 알지 못한다는 걸, 그럴수록 더 다양한 책을 읽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실 이 책모임은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 시작했다. 일찍부터 시기에 맞는 양질의 책을 엄선해서 들이밀었지만 아이는 책보다는 레고나 큐브를 갖고 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집에 책이 많으면 질려서 안 읽는다는 낭설이 우리 아이에게는 참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챙겨 보는 애니메이션이 많아지고 온라인 게임에 발을 들이자 책을 읽을 시간과 의욕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래서 강제성을 부여하면서도 아이들과 책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책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내가 20대 후반부터 꾸준히 책모임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책 속의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는 틀을 만든 경험이 있었기에, 아이에게 책모임을 통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어린 친구들의 개성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이렇게 경험의 폭 자체를 넓혀주는 책을 만나는 즐거움도 컸다.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오래 지냈고 동화작가가 된 뒤로도 어린이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해왔는데, 책모임이 아니었으면 읽을 일 없는 책을 만나고 읽고 새롭게 배운다는 점이 참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그리고 방학 동안 가족 책모임을 만들려고 한다. 책모임을 하면서 가족과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주제들이 있었다. 아빠가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여러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주제도 있었다. 일단은 아이가 읽은 책에 대해 가족과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는 게 목표다. 부모로서도 아이를 둘러싼 세계와 아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점이 있을 거다. 긴 방학을 보람차게 보내고 가족이 더 끈끈해질 방법으로 책모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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