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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단절 ‘남북경협’ 80년 역사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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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동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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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제협력 현장을 직접 경험해본 전문가의 비율이 줄고 있다. 남북경협을 공부하는 학생, 업무를 맡게 된 공무원, 통일·외교·안보 부처를 출입하게 된 기자, 회사의 대북 진출 계획을 준비해야 하는 기업인, 남북경협에 관심 있는 시민을 위한 종합적인 교과서·참고서·안내서가 아쉬운 실정이다.”



국책연구소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을 지낸 조동호(65) 이화여대 북한학과 명예교수가 얼마 전 ’남북경협 80년: 절망과 기교의 역사’(이화여대출판문화원)라는 701쪽짜리 ‘벽돌 책’을 펴낸 까닭이다. 조동호 교수는 손꼽히는 북한 경제, 남북경협 연구자다. 조 교수가 출간 이유로 꼽은 ‘아쉬운 실정’은 전혀 허튼소리가 아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사업 전면 중단 이후 남북경협은 10년째 단절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당국회담도 2018년 12월 체육분과 회담을 끝으로 8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분단사에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긴 단절의 시간이다. 남북경협과 당국회담의 주무부처인 통일부 공무원 가운데 회담과 경협 현장 방문 경험이 있는 이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경험의 소멸, 그리고 망각은 역량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록은 경험을 보존하고 기억을 지속시키는 힘이 있다. 조 교수의 ‘남북경협 80년’ 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할 까닭이다.



남북 경제협력의 공식 출발점을
1988년 ‘7·7특별선언’이 아니라
1945년 분단 뒤 ‘38무역’으로 삼아
“80년간 경협은 정상, 단절이 비정상
지금은 전례 찾기 힘든 긴 단절”



그의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2025년 기준 ‘경협 80년’이라는 인식 틀이다. 연구자들은 남북경협을 합법·공식화한 노태우 대통령의 1988년 ‘7·7 특별선언’을 경협의 공식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 계산하면 38년이다. 그런데 조 교수는 그보다 훨씬 먼 과거로 달려갔다. 왜?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으로 ‘분단’된 뒤에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는 ‘남북경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남쪽은 농업, 북쪽은 공업’ 정책 탓에 38선으로 나뉜 남북한은 경제 구조상 “어느 지역도 독자적으로 지탱할 수 없다”는 게 미군정사령관 하지의 판단이었다. 하여 전쟁 전까지는 미국 점령 남쪽과 소련 점령 북쪽이 38선을 경계로 교역했다. 분단 이후 경기 포천 양문리, 동두천 초정리, 개성 토성리·대원리와 같은 38선 주변 국도에 교역장이 섰다. 이런 자연 발생적 남북교역은 ‘38무역’이라 불렸다. 결국 미군정은 1947년 2월 “38도 이북과의 교역은 국내 상업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남북경협의 대원칙인 ‘민족 내부 거래’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1947년 남한 전체 무역의 23.2%, 북한 전체 무역의 15.0%가 남북 간 교역이었다. 조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면 남북경협이 정상이고, 단절이 비정상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남북경협 경험한 전문가 줄어들자
700쪽짜리 ‘벽돌 책’ 직접 발간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 남북경협’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199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들어갈 때도 전공인 노동시장을 다루는 ‘노동경제팀’에 지원했다. 그런데 연구원 쪽에서 ‘북한 경제 연구 부서로 지망 부서를 바꿀 생각이 없냐’는 연락이 왔고, 그는 “당황”했지만 결국 응했다. 필연은 우연의 얼굴을 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던가? 그 우연한 선택이 필생의 업이 됐다. 그는 자신이 북한 경제를 연구하게 된 건 “돌이켜보면, 운명”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평안남도 안주가 고향이 아버지, 충청남도 홍성이 고향인 어머니, 그러니까 한국전쟁 탓에 “본의 아니게 홀아비와 딸 달린 과부”가 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북한엔 어머니가 다른 형들이, 남한엔 아버지가 다른 누나”가 있다고 책에 적었다.



학자 조동호의 ‘중간자적 마당발’ 정체성은 어쩌면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깊게 밴 그의 개인사 위에서 핀 ‘꽃’일지 모른다. 그는 북한 경제, 남북경협 연구자들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이 책을 읽고 보수와 진보 모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터인데, 그 ‘불만’의 공간이 바로 ‘연구자 조동호’의 존재 이유라 하겠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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