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끝내 붙잡는 건 삶이다. 번거롭고 성가신데도, 포기할 수 없는 것. 뮤지컬 ‘비틀쥬스’가 다루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확대경에 가깝다.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 서울에서 재연 막을 올린 ‘비틀쥬스’(3월22일까지)는 팀 버턴 감독의 1988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쇼 뮤지컬이다. 영화가 지녔던 기괴한 미감과 블랙코미디의 정서를 무대 언어로 옮기되, 주제를 ‘현재의 삶’으로 끌어온다. 무대 위에 놓인 집 한채는 곧 살아 있는 생물처럼 뒤틀리고 폭주한다. 벽이 갈라지고 구조가 접히며 공간이 전복되는 변형의 쾌감, 손으로 만든 장치와 인형(퍼핏)이 만들어내는 촉감이 “세상은 원래 정상적이지 않다”는 선언을 실물로 증명한다.
영화처럼 죽은 자와 산 자가 한 지붕 아래서 충돌하는 소동이 큰 줄거리다. 새엄마로 인해 가족과 갈등 중이며 유령을 볼 수 있는 소녀 리디아(홍나현∙장민제)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통로가 된다. 이 갈등 속에 저승의 악동 비틀쥬스(정성화∙정원영∙김준수)가 끼어든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이번 무대의 백미는 원작의 시각적 아이콘을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박진감 있는 무대 언어로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 속 상징이었던 모래벌레는 장면의 리듬과 긴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존재로 기능한다. 거대한 몸체가 공간을 가르며 등장하는 순간, 객석은 웃음과 놀람 사이에서 동시에 숨을 들이킨다. 컴퓨터그래픽(CG) 없이 구현된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오히려 더 생생하다.
음악은 장르의 경계를 재치있게 넘나든다. 로큰롤의 질주 뒤에 가스펠의 떼창이 이어지고, 라틴 리듬이 분위기를 전복한다. ‘데이-오’와 ‘점프 인 더 라인’ 같은 흥겨운 넘버가 쇼의 속도를 밀어붙이다가도, ‘데드 맘’과 ‘홈’ 같은 노래는 감정의 바닥을 드러낸다. 웃음의 온도를 유지한 채 상실의 깊이를 정확히 찌르는 구성 덕분에, 죽음은 현재형의 질문으로 관객 앞에 놓인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이번 재연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말맛’이다. 원작과 브로드웨이 초연이 지녔던 미국적인 정서를 한국 관객의 리듬으로 다시 빚었다. 개그맨 이창호가 각색으로 참여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이창호는 “정치·종교·성 등 금기에 구애받지 않고 날것의 농담을 가져와 대사를 다듬었다”며 “매일 관객 반응을 확인한다. ‘초연보다 재밌다’는 말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덕분에 “떡볶이에 당면을 넣을까” 같은 툭 던지는 한국적 대사가 깨알 웃음을 선사한다. 다소 거친 욕설과 성적 농담도 섞이지만 불편함을 유발하기보다 웃음의 리듬 안에 흡수되는 수위다. 말맛을 통해 캐릭터의 능청과 장면의 추진력이 더 힘을 얻는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원작 영화와 갈라지는 부분도 이 대사의 ‘말맛’에 있다. 영화 속 비틀쥬스는 주변부에서 판을 어지럽히는 문제적 존재에 가깝다. 반면 무대 위 비틀쥬스는 해설자이자 진행자로 나선다. 정성화·정원영·김준수라는 화려한 캐스팅에 걸맞은 비틀쥬스의 ‘하드캐리’가 인상적이다. 영화가 냉소적인 기괴함으로 죽음을 비틀었다면, 뮤지컬은 그 기괴함을 웃음으로 감싸 삶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야기는 “죽음이 얼마나 엉망인가”에서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방향을 틀어 더욱 선명해진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좌충우돌 소동극은 결국 ‘삶은 번거롭지만 살 가치가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지지고 볶고, 귀찮고, 때로는 기괴할 만큼 뒤틀리는 날들도 결국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괴팍하고 기괴한 비틀쥬스는 관객 자신의 또 다른 얼굴로 읽힌다. 작품은 인간의 민낯을 요란한 웃음으로 드러내지만, 우리가 왜 사는지, 상실을 어떻게 견디는지, 고된 삶 속에서도 다시 내일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는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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