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의 주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AI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AI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가 연초부터 시끄럽다. 앞서 정부는 글로벌 ‘AI 3강’을 목표로 네이버클라우드·업스테이지·SK텔레콤·NC AI·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5개 정예팀을 ‘국가대표 AI’ 기업으로 선발했다. 이달 15일 내 탈락하는 1개팀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후 6개월마다 평가를 거쳐 2027년 최종 1~2개 팀을 선발한다. 하지만 상황은 전입가경이다. 이달 3일 업스테이지를 시작으로 5일 네이버클라우드, 8일 SK텔레콤이 중국 모델을 베꼈다는 논쟁이 이어졌다.
성능을 끌어올리기도 바쁜데 선발된 정예팀 상당수가 해명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논란의 중심에 선 각 기업은 1차 탈락이 결정되기에 앞서 모방 논란이 심사에 결정적 요인이 될까 전전긍긍한다. 이유는 각사마다 다르지만, 논란의 핵심은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AI 모델을 맨 첫 단계부터 모두 직접 구축하는 방식)의 명확한 정의 부재, 가중치 의존도와 독자성 및 오픈소스 활용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베끼는 것은 저작권 문제만 없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 오히려 허용가능한 범위에서 더 베껴야 한다. 현대차가 오픈소스로 공개된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AI모델 ‘알파마요’를 도입한다고 “베낀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픈소스를 제공한 측에서 저작권과 상관없이 써도 된다고만 하면 얼마든지 써도 된다. 소유권, 사용권에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이게 남의 것을 베껴 빠르게 기술격차를 좁혀 성능을 끌어올리는 게 현명한 길이다. 하지만, 운영자이자 심판인 정부의 반응은 지나치게 미온적이다. 정부는 논란을 잠재워줄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칙론만 내세우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4일 소셜미디어(SNS)에 “평가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 될 것이고 윤리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비로소 ‘K-AI’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성장통 없는 혁신은 없다”고 했다. 하정우 AI 수석은 “건설적인 토론과 논쟁 그리고 깔끔한 승복까지 이것이 우리 AI 생태계가 글로벌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 단면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 사안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는 빠진 알맹이 없는 입장이었다.
AI 산업 원천기술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로 구성된 서버, 데이터센터,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다. 이 원천기술 위에 클라우드의 다양한 AI 솔루션 등을 기반으로 AI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져 응용 서비스로 구현된다. 챗GPT로 따지면 데이터센터와 GPT라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원천기술이고 챗GPT를 포함해 소라, 오픈AI가 개발한 AI브라우저 아틀라스 등이 응용서비스다. 결국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파운데이션 모델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컴퓨팅 인프라, GPU가 필요하다. 정부가 국가대표 AI 개발에 직접 나선 이유다.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어야 이를 기초로 각각의 산업과 공공에서 필요로 하는 AI 모델을 해외 기술에 대한 의존 없이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가 GPU와 데이터 등 자원을 집중 지원하며 AI 모델 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국가 주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비영리 연구 기관인 에포크AI는 5개 정예팀의 AI 모델이 ‘주목할 만한 AI 모델(Notable AI Model)’ 리스트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오픈소스 커뮤니티인 허깅페이스의 클렘 들랑그 CEO 역시 (한국 정예팀이) 공개한 파운데이션 모델 3개가 최근 인기 급상승 목록에 올랐다고 소개하며, 이를 “오픈소스 AI에 대한 국가 지원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자화자찬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스탠퍼드대의 ‘AI 활동성 지수’에서 4위를, 영국 토터스 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 인덱스’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은 굳건한 1~2위 국가고 그 뒤를 나머지 국가들이 뒤쫓아가는 형국이다.
한국이 아직 AI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명함을 못내밀고 있다. 세계적인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좌충우돌하는 사이 빅테크들은 AI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에너지 확보 등에 주력하고 있다. 심판인 정부가 적극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프롬 스크래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세계적 수준에 명함을 내밀만한 성능이다.
안상희 기자(hu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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