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12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권태호 | 논설위원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3명의 서울대 출신 여성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나경원(여성특보), 이혜훈(정책특보), 조윤선(선대위 대변인). 1960년대생인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 엘리트들이 전방위적으로 각계각층에 진출한 사실상 1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조윤선(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치권을 떠날 때까지 10여년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이지 않는 경쟁도, 보이는 경쟁도 치열하게 치렀다.
나경원은 ‘친○계’보다는 ‘비○계’라고 불릴 때가 더 많았고, 이혜훈은 ‘친박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의원이 된 조윤선은 ‘친이계’로 분류됐다. 이혜훈은 저돌적이고 맹렬했다. 사소한 일에도 전심전력을 다했다. 윗사람들이 이혜훈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런데 2012년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안 되면 창조경제도 헛일”이라며 날을 세웠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이혜훈과 박 대통령 사이는 떴고, 그 자리는 조윤선 몫이 됐다. 이미 이혜훈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12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서초갑에 단독 공천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그렇게 가장 먼저 무대에서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16년 총선 서초갑 경선에서 당시 ‘박근혜의 여자’였던 조윤선을 상대로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역전극을 거두며 자력회생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으로 갔다. 이때까지 행보만 보면, 이혜훈은 ‘따뜻한 안쪽’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차가운 바깥쪽’으로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로는 권력 향배만 좇았다. 윤석열 경선 캠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윤 어게인’까지. 돌아보면, ‘친박’에서 ‘비박’으로 바뀐 것도 ‘옳음’을 위해서였는지, 권력이반에 따른 자구책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혜훈은 악착같다. 이 세대 엘리트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동시에 제 역할을 해낼 것을 요구받았다. 아들 셋을 키운 이혜훈은 둘째 임신 당시 병실에 모니터를 갖다 놓고 누워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육아·출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당시 사수였던 유승민 전 의원이 방패막이가 돼줬다고 할 정도로 젊은 날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신혼 초기, 시아버지 김태호 전 의원 선거운동에도 남편보다 더 적극 나섰다. 종종 그는 그때 선거사무실에서 커피를 얼마나 많이 탔는지 얘기하곤 했다. 이혜훈은 학창 시절부터 인생 내내 매사에 온 힘을 다 쏟았을 것이다. ‘보좌진 갑질’ 녹취를 들었을 때, 내용만으로도 깜짝 놀랐지만 최말단 인턴에게 의원이 직접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바깥일에 신경 쓰다 보면 집안일엔 등한시하는 경우도 많은데, 드러나는 여러 의혹을 보니 이혜훈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한 데가 없는 것 같다. 갑질, 부동산 투기, 아들 병역 특혜, 편법 증여, 논문 ‘아빠 찬스’ 등 청문회 단골 소재 가운데 빠진 게 없다. 참으로 성실하다. 이 가운데 억울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23년 12월 결혼식을 올린 장남 혼인신고를 미뤄 부양가족으로 신고해 가점을 높여, 2024년 8월 서울 반포동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이른바 ‘위장미혼’ 편법은 신박하다. ‘위장미혼’이 없었다면 당첨될 수 없었다. 이 후보 남편은 ‘래미안 원펜타스’ 137.6㎡(54평형)를 36억7840만원에 분양받았는데, 1년5개월 지난 지금 호가는 70억~80억원이다. 이혜훈은 오랫동안 무주택자로 살았다. 2020년 인터뷰에서 ‘무주택자 설움’을 이야기하며 “집주인한테 전화가 오는 날이면 밥이 안 넘어간다”고 했다. 그때 이혜훈의 아파트 전세금은 26억원이었다.
이혜훈 후보 지명은 ‘통합’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만일 이 후보자가 국민의힘 소속이 아닌 민주당 소속 또는 외부 전문가였다면, 벌써 지명철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낙마의 결정적 계기가 ‘비데 수리와 음식물쓰레기’였다. 윤석열 정부 때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낙마 이유 중 하나가 ‘부동산 갭투자’였다. 공무원 특별공급 세종시 아파트, 딸이 외할머니 아파트를 10년 전 가격으로 전세 끼고 산 것 등이다. 가액보다 방식이 문제이긴 하나 그 아파트 가격은 4억원, 6억원, 갭투자 수익도 1억원대였다.
‘역전의 명수’인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6년 서초갑 경선에서 조윤선을 이겼고, 2024년 중구·성동구을 경선에선 1차에서 16%포인트 뒤졌으나, 이틀 만에 20%포인트 끌어올려 하태경을 꺾었다. 인사청문회에서까지 그런 역전극을 또 보고 싶진 않다.
‘이혜훈’이 갖는 상징성이 이재명 정부에 기여하는 바가 없진 않겠으나, 그걸 얻으려면 이재명 정부와 상충되는 가치를 너무 많이 용납해야 한다. 국민들 마음은 이미 식었는데, 굳이 청문회에서 확인까지 해야 할까.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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