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 대표]
기업에게 부동산은 오랫동안 '효율성'의 대상이었다. 직원들이 일하기 편한 교통 요지, 쾌적한 냉난방 시스템, 그리고 자산 가치의 안정성. 이것이 사옥을 고르는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이 오래된 명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척점은 강남구 '논현동'과 성동구 '성수동' 사이에서 관측된다. 두 지역 모두 기업들이 선호하는 핵심 업무 권역이지만, 그들이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은 마치 '기성복(Ready-made)'과 '맞춤복(Bespoke)'의 차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완성된 효율을 사는 논현동, 가능성의 시간을 사는 성수동
강남의 전통적인 업무 지구인 논현동을 찾는 기업들의 성향은 명확하다. 그들은 '이미 지어진, 완벽한 신축 건물'을 선호한다. 최근 논현동의 실거래 사례를 분석해보면, 거래된 건물의 대다수가 준공 1년 미만이거나 즉시 입주가 가능한 신축 건물이다.
기업에게 부동산은 오랫동안 '효율성'의 대상이었다. 직원들이 일하기 편한 교통 요지, 쾌적한 냉난방 시스템, 그리고 자산 가치의 안정성. 이것이 사옥을 고르는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이 오래된 명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척점은 강남구 '논현동'과 성동구 '성수동' 사이에서 관측된다. 두 지역 모두 기업들이 선호하는 핵심 업무 권역이지만, 그들이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은 마치 '기성복(Ready-made)'과 '맞춤복(Bespoke)'의 차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완성된 효율을 사는 논현동, 가능성의 시간을 사는 성수동
강남의 전통적인 업무 지구인 논현동을 찾는 기업들의 성향은 명확하다. 그들은 '이미 지어진, 완벽한 신축 건물'을 선호한다. 최근 논현동의 실거래 사례를 분석해보면, 거래된 건물의 대다수가 준공 1년 미만이거나 즉시 입주가 가능한 신축 건물이다.
이는 '도시화 경제(Urbanization Economies)'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모든 인프라가 고도로 집적된 강남에서는 시간 비용이 매우 비싸다. 기업들은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지난한 과정을 견디기보다, 웃돈을 주더라도 당장 내일부터 비즈니스가 가능한 '완성된 공간'을 구매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효율을 극대화한다.
반면, 한강 건너 성수동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크래프톤, 무신사, 젠틀몬스터와 같은 트렌드 리딩 기업들은 번듯한 새 건물이 아닌, 붉은 벽돌의 낡은 공장이나 오래된 카센터 부지를 찾아다닌다. 실제로 최근 성수동 거래 데이터를 살펴보면, 19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지어진 노후 건물의 거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건물의 상태가 아니라, 멸실 후 그 위에 세워질 '미래의 그림'이다. 이는 국지화 경제(Localization Economies)와 맞닿아 있다.
동종 업계나 창의적인 기업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트렌드를 만드는 성수동에서는, 남들과 똑같은 빌딩은 매력이 없다. 기업들은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노후 건물을 허물고, 기업의 철학과 아이덴티티를 담은 사옥을 직접 건축한다. 성수동에서 부동산 매입은 단순한 자산 취득이 아니라, 브랜딩의 시작점이다.
지대론의 한계와 집적이론의 부상
과거에는 도심과 부도심의 지가 차이를 윌리엄 알론소(William Alonso)의 '입찰지대이론(Bid Rent Theory)'으로 설명했다. 도심(강남)에서 멀어질수록 지대가 낮아진다는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 준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대 덕분에 수평적 공간 실험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시장 상황은 이 고전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성수동이 핵심 업무지구로 부상하면서, 오히려 전통적인 도심권보다 평당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지가 역전 현상'이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성수동 현상은 지대론보다는 '집적이론(Agglomeration Theory)'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보통신(IT),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특정 산업군의 기업들이 성수동에 밀집하면서 발생하는 정보의 교류, 인재 확보의 용이성, 그리고 지역 자체가 주는 힙(hip)한 이미지가 물리적 입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즉, 단순히 '강남에서 가까워서'가 아니라, '성수동이라는 집적지(cluster)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곳의 노후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2024년 vs 1970년
최근 6개월의 실거래 조사 데이터는 이러한 가설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한다. 논현동의 거래 목록에서는 '2023~2024년 승인'된 건물들이 상단을 차지하는 반면, 성수동의 거래 목록은 '1970년대 승인'된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논현동의 매수자는 건물의 '현재 사용 가치(function)'에 값을 지불했고, 성수동의 매수자는 토지의 '잠재적 가치(potential)'에 값을 지불한 것이다.
공간 소비의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
우리는 지금 소비재 시장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가 부동산 시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 식음료와 의류 시장이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화했듯, 기업의 부동산 소비 또한 획일적인 오피스에서 '기업 맞춤형 공간'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부동산 소유자와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이제 단순히 건물을 높게, 새롭게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수동의 사례가 보여주듯, 성장하는 기업들은 백지상태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따라서 토지 매각 시 '명도(vacancy, 공간을 비워주는 것)'의 가치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복잡한 임대차 관계가 얽힌 낡은 건물보다, 즉시 철거하고 신축할 수 있는 깨끗한 땅이 더 비싼 값에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향후 상업용 부동산의 승패는 '입지'라는 물리적 조건을 넘어, 그 공간에 들어올 테넌트(tenant)의 성격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공간 솔루션'을 기획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공간 아이덴티티' 선호 현상은 강남과 성수를 넘어,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서울의 신흥 상권들로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글=정은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정은상 님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글로벌 기업 엔에이아이(NAI)의 한국법인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주택학회 산하 프롭테크 빅데이터 연구소장으로도 활동중이다. 20년간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 및 중개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자와 국내 디벨로퍼를 연결하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부동산 테크 기반 플랫폼 구축과 스마트에이전트 툴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실물자산 기반의 투자 판단에 있어 데이터 기반 분석과 스토리텔링 중심 브랜딩이 융합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기술과 인간 그리고 공동체를 잇는 부동산의 미래를 꿈꾼다. 칼럼명 [부메랑]은 '부동산 메타인지와 랑데부(Rendez-vous)'의 줄임말로 테크M 독자들과의 정기적 만남을 통해 부동산 인사이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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