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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자금줄 '물꼬'⋯ 규제 밸브는 안 풀렸다 [리코드코리아]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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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신용대출 10.7조 불어났지만
리스크 대비 자본 더 쌓아라 규제
규제·심사·보상까지 한 번에 바꿔야



올해는 돈의 길이 바뀌는 '금융 재배선'의 원년이다. 주택담보대출에 갇혀 있던 유동성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성장자금으로 흐르며 '리코드 코리아'의 밑그림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노선이 바뀌었다고 곧바로 목적지에 닿는 건 아니다. 자본적정성 규제와 담보 중심의 영업 관성이 전환의 속도를 붙잡는다. 경기 둔화·고환율·공급망 재편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의 상환 여력이 흔들리면 은행은 건전성 방어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금융 재배선이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기업대출에 과도하게 얹히는 자본부담을 완화하고 기술력·성장성 중심 심사 기준을 표준화하며 공급실적이 내부 성과지표(KPI)에 반영되도록 운영ㆍ평가 규칙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으로 가는 '돈 길' 열렸는데⋯자본규제가 발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산업 지원을 본격화한다. 올해 지원 규모는 AI 6조원, 반도체 4조2000억원, 바이오·백신 2조3000억원, 이차전지 1조6000억원 등 30조원 규모다.

정부가 길을 트자 508조원의 생산적·포용 금융을 약속한 5대 금융그룹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18조5677억 원을 기록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말 307조9137억 원과 비교하면 넉달새 10조6500억 원이나 불어난 것이다. 잔액 기준만 놓고 보면 2023년 4월(327조4150억 원) 이후 2년 반 만에 최고치다.

황인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연구실장은 "가계와 부동산 등 비생산 부분에 집중된 대출을 기업 등 생산 부문으로 전환시킬 경우 장기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p)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돈 줄'을 쥐고 있는 은행의 체력이다.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5.87%로 전 분기 대비 0.14%포인트(p) 하락했다. 이 비율이 떨어지면 은행의 잠재적 손실 대응 여력도 그만큼 약해진다.

다른 건전성 지표인 기본자본비율 역시 같은 기간 14.84%로 0.09%p 낮아졌고 보통주자본비율(CET1)도 13.59%로 0.03%p 밀려났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적 금융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 적정 연체율과 자본비율 등 재무안정성 확보에도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혁신·중소기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며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금융지주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규제·심사·KPI 한 방향으로 뜯어 고쳐야



무엇보다 규제의 마찰을 줄여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이 기업·혁신 분야로 자금을 더 보내게 하려면 같은 대출이라도 자본을 더 쌓게 만드는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기업·첨단산업 대출은 경기 민감도가 높아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이 크다.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면 은행은 기업여신을 늘릴수록 자본비율 관리 압박을 함께 떠안는다. 금융당국도 이런 병목을 인식해 건전성 규제 완화와 감독관행 개선을 살피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자본규제를 합리화해 금융회사가 생산적 영역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과도한 리스크 회피를 부르지 않도록 검사·감독과 면책 체계도 함께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규제를 풀어도 '읽는 눈'이 없으면 돈은 흐르지 못한다. 은행이 기술력과 시장성을 같은 기준으로 읽어내는 심사역량을 갖춰야 자금이 '담보'가 아닌 '사업성'을 따라 움직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술평가 오픈플랫폼 'K-TOP'은 평가의 공통 기준을 넓히려는 대표적인 시도라는 평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들이 대출보다 투자에, 기업의 재무제표보다 기술 평가에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생산적 금융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금융사 내부의 KPI와 보상체계를 생산적 금융으로 재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책이 "기업으로 향하라"고 외쳐도 성과평가가 안전자산 위주로 설계돼 있으면 현장은 원래의 길(담보 중심의 영업)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황 실장은 "자금 흐름을 바꾸려면 금융기관의 신용공급 인센티브를 조정하고 중소·신생기업의 사업성과 기술력을 평가할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며 "자본투자와 벤처캐피탈 활성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투데이/박선현 기자 (sunhyu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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